PKwon/goola

[PKwon] 마츠모토 세이초 - 안개깃발

李蘭胡 2024. 6. 9. 10:54

마츠모토 세이초 - 안개깃발

kayneh 님이 마츠모토 세이초 작품을 언급하셨기에 마침 오래 전부터 쓰려던 글이 있어서 씁니다.

===

마츠모토 세이초의 작품 중 '안개깃발' (霧の旗) 이라는 게 있습니다.

1959-60년 어느 녀성지에 연재된 작품이라 여성향입니다.

내용은, 규슈 어느 소도시 (세이초는 규슈 출신) 에 사는 녀자 키리코('키리'에는 '안개'라는 의미도 있음. 일본어에서 자주 나오는 한자놀이)가, 자기 오빠가 고리대금업자 녀자를 강도살해한 죄로 감옥에 갇혀 있으니,

이 지방 출신의 유명 벼노사 오츠카에게 변호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오츠카는 별볼일 없는 사건이라 해서 그냥 무시합니다.

이후 키리코의 오빠는 감옥에서 죽고 (연출에 따라 사형이기도 하고 병이기도 하고 다름.)

키리코는 도쿄로 올라옵니다.

1950년대 도쿄의 퇴폐적인 분위기를 이해해야 감상하기 좋은 작품이라 옛날에는 자주 극화되었으나 그 시대와 멀리 떨어진 지금은 극화되는 비중이 적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키리코는, 오빠의 무죄를 밝히거나 그러는 게 아니라,

변호를 안해 준 오츠카에게 복수하기 위해 도쿄의 고급 유흥가로 들어가는 황당한 스토리로 그려집니다.

오츠카는 물론 깨끗한 변호사가 아니고 녀자관계도 복잡하며 여러 가지 비리가 있으나, 키리코와는 원한이 될 일이 없는 사람인데,

도대체 왜 키리코가 오츠카에게 복수하는지 그 개연성이 없어서, 당시에도 문학평론가(당시는 추리소설은 쓰레기로 생각해서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으나 세이초는 추리소설이 아닌 작품으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적이 있어 문학가로 인정되었음) 들이, 왜 키리코가 오츠카에게 복수하나 하는 토론이 있었는데 어떤 평론가가 할 말이 없어서, '오츠카는 키리코에게 '무관심의 죄'를 지었다' 라고 말했다 합니다.

종전 이후 각박해진 인심으로 인해 오츠카 같이 잘나가는 사람이 키리코 같은 부류에게 무관심해서 키리코가 복수했다 이런 설명을 합니다.

결말은, 키리코는 결국 오츠카를 파멸시키고 홀연히 어딘가로 떠나지만, 아마도 다시는 평범하게 살 수 없을 것이다 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오빠가 진짜 살인을 했는지 아닌지는 아-모도 관심없고 설명되지도 않습니다 (후일의 각색판에서는 밝혀지는 판도 있기는 함).

70년대 이후 영화 등 각색판에는 키리코 한 사람만의 힘으로 오츠카 같은 거물을 파멸시킬 수는 없다고 보고 원작에는 없는(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별로 존재감 있는 인물은 아닌듯) 삼류주간지 기자 아베 케이치라는 인물이 조력자로 나오는데, 케이치는 키리코를 짝사랑하지만, 이야기가 끝났을 때는 이미 키리코는 케이치 같은 보통 사람과 같은 세상에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있습니다.

===

사실 이 작품도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있을 텐데, 다 알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다만 그 원형이 될 수 있는 작품이 하나 있긴 한데 (결이 약간은 다릅니다), 오늘 이야기 하려다가 , 다른 날로 미루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오후 (한국시간 월요일 오전) 에 또 큰 글 쓸 것이 있어서 잠시 몸 좀 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