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won/goola
[PKwon] 二十四の瞳
李蘭胡
2024. 6. 16. 15:30
二十四の瞳
24개의 눈동자는 츠보이 사카에가 1952년 내놓은 소설로,
시코쿠 카가와현 근처에 있는 쇼도시마라는 작은 섬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하필 왜 이 이야기냐 하면, 츠보이의 고향이 이 섬이기 때문입니다.
쇼도시마는 간장으로 유명한 섬인데, 작은 섬이라 간장 외에는 이렇다 할 게 없는 섬입니다. 이름 자체가 小豆島로 (본래는 아즈키시마,' 팥섬' 이라 불렸다가 재해가 많이 일어나서 개명했다고 전함), 콩, 팥 말고는 없다 이런 의미인데,
이 섬에서 자란 아이들 12명 (남5 녀7-후일 리메이크에서는 약간 바뀌는 경우도 있음)과 녀선생 히사코 사이의 인간간계를 다룬 소설이며,
내놓은 년대를 보면 짐작되겠지만 2차대전을 겪고, 12명이 다시 교사로 복직한 히사코 앞에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끝이지만, 24개가 아니라 18개의 눈동자만 돌아왔습니다. 한 명은 전사하고, 한 명은 전병사(전장에서 병사 - 당시 일본군은 보급체계가 여의치 않아 전병사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했으며,
한 명은 과달카날 전투에서 장님이 되어 돌아왔으므로, 18개만 남았습니다.(판에 따라 사망자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하기는 하는데 나는 그렇게 기억하였습니다. 선생의 남편과 막내딸도 죽지만 이 글의 중점이 아니므로 생략.)
====
이 작품은 일본인의 감성을 자극하여 최소한 10번은 영상화 된 것으로 압니다. 1954년 기노시다 게이스케 (전에 '일본의비극' 이란 영화를 소개하며 논한 적 있음)가 다카미네 히데코를 주연으로 찍은 작품으로 시작해, 8월쯤 되면 스페셜 드라마로 몇 년마다 한번씩 리메이크 되곤 하였습니다. 저도 일본 드라마 볼 때 2종 정도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맨 처음에 히사코의 등장 장면에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장면은,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있어서 어떤 리메이크에서도 절대로 빠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그 시대가 대충 1928년인가 그럴 텐데 (소설에는 연도나 지명 같은 건 나오지 않음), 그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그 섬에 거의 없어서, 섬 사람들이 신기해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도시 같은 데는 차가 다니고 어쩌고 했지만 그런 섬에서는 아마 그 시절에는 도로도 제대로 없었을 텐데, 차가 있었어도 관용차 같은 거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우성엽인지 우승엽인지 하는 사람이 하는 생존 팟캐스트를 최근 듣는데, 뇨소수라는 게 없어서 통학차가 멈추게 되었다 이런 소리가 들리더군요?
학원 같은 데 가는데 대개 스타렉스 같은 거 타고 가는데, 뇨소수가 없어서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왜 이 작품이 생각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뇨소수가 꼭 필요한지에 대한 논은 여기서 하지 않기로 합니다. 유럽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런 걸 들여왔는데 내가 볼 때는 필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뇨소수가 필요한지는 차치하고,
이런 하찮은 것으로도 교통망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거이 현대 사회의 현실이고,
차가 못 다니면, 자전거 타고 다녀야 합니다.
쥐나가 처음 개방될 때에 다들 자전거 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고, 월남도 개방될 때 자전거, 모터사이클 타고 다녔습니다. (월남은 교통이 복잡해서 아직도 모터사이클이 더 빠르기 때문에 지금도 많이 사용함).
문명이 복잡해지면 한두 가지만 빼도 멈출 수 있게 되고,
결국은 그렇게 되면 제일 원초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마이크로칩이 없어서 차들이 많이 나오지 못한다는데,
한두 군대만 맥을 끊어 놓으면 판을 엎기가 아주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왜 서양의 그 머리 좋다는 자들이 생각을 못했을까요?
자기들이 직접 그런 일을 하지 않기 떄문입니다. 고담준론만 하지 실제로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지는 데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시코쿠 카가와현 근처에 있는 쇼도시마라는 작은 섬에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하필 왜 이 이야기냐 하면, 츠보이의 고향이 이 섬이기 때문입니다.
쇼도시마는 간장으로 유명한 섬인데, 작은 섬이라 간장 외에는 이렇다 할 게 없는 섬입니다. 이름 자체가 小豆島로 (본래는 아즈키시마,' 팥섬' 이라 불렸다가 재해가 많이 일어나서 개명했다고 전함), 콩, 팥 말고는 없다 이런 의미인데,
이 섬에서 자란 아이들 12명 (남5 녀7-후일 리메이크에서는 약간 바뀌는 경우도 있음)과 녀선생 히사코 사이의 인간간계를 다룬 소설이며,
내놓은 년대를 보면 짐작되겠지만 2차대전을 겪고, 12명이 다시 교사로 복직한 히사코 앞에 다시 나타나는 것으로 끝이지만, 24개가 아니라 18개의 눈동자만 돌아왔습니다. 한 명은 전사하고, 한 명은 전병사(전장에서 병사 - 당시 일본군은 보급체계가 여의치 않아 전병사 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음)했으며,
한 명은 과달카날 전투에서 장님이 되어 돌아왔으므로, 18개만 남았습니다.(판에 따라 사망자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하기는 하는데 나는 그렇게 기억하였습니다. 선생의 남편과 막내딸도 죽지만 이 글의 중점이 아니므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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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일본인의 감성을 자극하여 최소한 10번은 영상화 된 것으로 압니다. 1954년 기노시다 게이스케 (전에 '일본의비극' 이란 영화를 소개하며 논한 적 있음)가 다카미네 히데코를 주연으로 찍은 작품으로 시작해, 8월쯤 되면 스페셜 드라마로 몇 년마다 한번씩 리메이크 되곤 하였습니다. 저도 일본 드라마 볼 때 2종 정도 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맨 처음에 히사코의 등장 장면에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장면은, 트레이드마크처럼 되어 있어서 어떤 리메이크에서도 절대로 빠지지 않는 장면입니다.
그 시대가 대충 1928년인가 그럴 텐데 (소설에는 연도나 지명 같은 건 나오지 않음), 그 때까지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사람들이 그 섬에 거의 없어서, 섬 사람들이 신기해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대도시 같은 데는 차가 다니고 어쩌고 했지만 그런 섬에서는 아마 그 시절에는 도로도 제대로 없었을 텐데, 차가 있었어도 관용차 같은 거나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우성엽인지 우승엽인지 하는 사람이 하는 생존 팟캐스트를 최근 듣는데, 뇨소수라는 게 없어서 통학차가 멈추게 되었다 이런 소리가 들리더군요?
학원 같은 데 가는데 대개 스타렉스 같은 거 타고 가는데, 뇨소수가 없어서 다닐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 소리를 듣고 갑자기 왜 이 작품이 생각 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하.
뇨소수가 꼭 필요한지에 대한 논은 여기서 하지 않기로 합니다. 유럽의 비위를 맞추려고 그런 걸 들여왔는데 내가 볼 때는 필요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뇨소수가 필요한지는 차치하고,
이런 하찮은 것으로도 교통망을 마비시킬 수 있다는 거이 현대 사회의 현실이고,
차가 못 다니면, 자전거 타고 다녀야 합니다.
쥐나가 처음 개방될 때에 다들 자전거 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고, 월남도 개방될 때 자전거, 모터사이클 타고 다녔습니다. (월남은 교통이 복잡해서 아직도 모터사이클이 더 빠르기 때문에 지금도 많이 사용함).
문명이 복잡해지면 한두 가지만 빼도 멈출 수 있게 되고,
결국은 그렇게 되면 제일 원초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됩니다.
마이크로칩이 없어서 차들이 많이 나오지 못한다는데,
한두 군대만 맥을 끊어 놓으면 판을 엎기가 아주 쉬운 것이라는 사실을 왜 서양의 그 머리 좋다는 자들이 생각을 못했을까요?
자기들이 직접 그런 일을 하지 않기 떄문입니다. 고담준론만 하지 실제로 어떻게 그것이 이루어지는 데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겁니다.
- 2021-11-04(2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