歷史, history/한국2022. 2. 20. 21:34

본 글은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 학도호국단의 단복과 당시 서울대학교의 교복과의 연관성을 내가 찾을 수 있는 자료들로 정리한 글임.

 

1. 학도호국단의 단복

우선 대학의 교복을 논하기 전에 학도호국단의 단복에 대해 알아본다. 학도호국단은 문교부 산하의 학생 군사 조직이고, 학도호국단의 단복은 곧 교복이기 때문에 일제 시대의 교복을 그대로 써도 되었던 중,고등학교와 달리 대학 교복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당시 빈부격차가 심했던 시대에 학생들에게 같은 교복을 입혀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서라는 표면적인 이유와 “해방정국의 대학에서 좌익발호를 막고, 학생들의 과격성을 수그러들게 하는 이유도 있었다.

여하튼 대학의 교복은 학내에서 자제적으로 제정한 것이 아니라 문교부 산하의 중앙학도호국단에 의하여 제정된 것이고, 아까도 말했듯이 학도호국단의 단복은 곧 교복이기 때문이다.

1949년 4월 22일 학도호국단 창설식.

1950년 3월에실린 대학 교복 도식.(“Strait is the gate”, 1950).

단복이자 대학교복은 서울대를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1947년 3월, 교모는 베레모를 쓰고(타 대학은 일제 때 교모를 씀), 교복은 감색 해군 서지(serge) 옷감으로 쓰고 더블 브레스트 형태의 정장으로 영미권의 해군 정복과 유사했다. 이는 영국 특수부대가 썼던 베레모를 착용해 내부 단결을 도모하고 엘리트 군인의 상징인 해군의 색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예나지금이나 해군이 육군보다 더 세련되고 깔삼해보임) 남학생은 감색 정장과 셔츠, 타이를 구성되었고 여학생은 감색이나 흑색 투피스싱글 브레스티드 재킷으로 지정했다. 참고로 교복은 배급제가 아니고 '옷감 1착분을 7000환에 사서 별도로 맞추는 방식이었다.

2. 전시연합대학

1953년 3월 1일, 3.1절 기념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가두행진.(부산에서 찍힌 사진으로 당시 부산에 임시 설치된 전시연합대학 시절이다)

 1949년부터 문교부는 경제적으로 활용하려고 간소화 시켜 교복을 중고교와 동일하게 제정할 예정이지만 6.25 전쟁 발발로 중단하게 된다. 전시연합대학 시절에는 47년 교복을 입거나 여건이 좋지 못할 때는 육군 군복, 고등학교 교복을 입었다.

3. 1955년 교복

 

1955년 제정된 교복은 중앙학도호국단의 건고 사항에 따라 개정되었다. 권고 사항은 흑색 또는 감색 선깃형 자켓으로 옷감은 국산으로 각 학교에서 임의로 제정하는 것이었다.

55년 교복의 특징은 스탠드 칼라에 다른 칼라를 결합해서 인민복 같은 형태이며, 가슴 주머니는 세로 지퍼로 처리되어있고, 지퍼 고리는 구리로 되있다. 그리고 왼쪽 소매에 학교 마크를 부착한다. 

이 형태의 디자인은 일본 국민복과 유럽 사관학교 군복을 참조한 걸로 보인다.

서울대외에 타대학은 찾기 어려운데, 가장 찾기 쉬운 방법은 60년대 학생운동 사진을 찾으면 된다. 짤은 고려대와 연세대로 가슴 주머니 형태와 마크만 차이난다.

4. 1965년 교복

65년 교복은 47년 교복과 유사한 정장 형태로 개정되었다. 학교 마크는 가슴에 다는 것으로 변경했지만, 이 교복은 '원단 품질이 좋지 않다', '유치원생 같다'는 비아냥만 듣고 잊혀졌다. 지금은 자료도 별로 없다.

 

5. 그 외

학도호국단 단복(대학교복)은 조선민족청년단의 단복과 같은 감색 제복을 사용하는데, 당시 제3의 위치(파시즘)에 가까운 민족 세력은 주로 민족국가의 엘리트가 될 교육을 내세웠고, 그렇기에 엘리트 군인의 상징이었던 해군의 색을 쓴거 같다.

그리고 학도호국단의 단복은 현 ROTC 단복과 거의 같다. 사실 학군단의 전신이 학도호국단이니 당연하겠지만 학군단 단복은 학도호국단 시절부터 현재까지 유지된거다.

출처 :

1947년 첫 선, 1979년 자율화…교복을 보면 현대사도 보인다 (https://www.snua.or.kr/magazine?md=v&seqidx=10070)

한국 대학 교복 변천에 대한 연구: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Posted by 李蘭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