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라 칸국은 우즈벡 지역에 있던 마지막 칸국이었습니다. 부하라 칸국은 중앙아시아에 있던 3개의 칸국이었지만 러시아 제국의 소장 미하일 체르냐예프(Михаил Григорьевич Черняев, Mikhail Chernyayev)의 침공으로 부하라의 왕가는 러시아 제국의 귀족으로 편입되고 러시아 제국의 보호국으로 전략하고 맙니다. 하지만 보호국인 만큼 명복상의 주권은 보장되었으며, 군대 또한 유지되었습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부하라의 군대는 1860년 부터 1920년 볼셰비키의 부하라 침공으로 멸망하기 까지의 부하라 에미리트의 군대를 다룹니다.
그레이트 게임 이전의 부하라의 군대는 부하라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3개 칸국들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이들의 군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연구되지 않고 기록을 찾기 때문에 당시 탐험가들의 기록과 삽화 등으로 간접적으로 아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은 1920년까지의 부하라 에미리트의 정규군을 중점적으로 쓰겠습니다.
1920년까지 에미리트군의 군대는 당시 정규군과 민병대로 구성된 전형적인 중앙아시아 봉건 국가의 군대였습니다. 기록의 따라 다르지만 정규군에서는 8,000명 이상의 보병과 7.500명의 기병대가 있었고, 16개에서 40개까지 포중에 10개는 산포, 대다수는 구식 화포였습니다. 지역 영주들이 이끌고 집결하는 민병대에는 최대 27,000명의 병력과 기병, 보병이 있었습니다. 상당수의 민병대는 낡은 화기로 무장하여 부싯돌과 성냥개비를 모두 사용하거나, 엽총이나 칼 만을 휴대하고 있었지만, 민병대 중에는 현대적인 볼트액션 소총 무장한 병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 부하라의 군복은 러시아 군복에서 가져왔습니다. 다만 장식은 제각각이었고, 부츠는 부하라 시민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였습니다. 상급 장교들의 제복은 각각 다르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장교들은 각자 견장색을 다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부하라 군대의 계급 체계를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군 계급은 러시아 군대의 계급들을 따랐습니다. 에미리트 군대의 계급은 함께 다음과 같이 명명되었습니다.
Alaman (Nefer) - 병사
Dog-Bashi - 부사관
Chur-Agasi - 선임하사
Mirza-bashi - 소위
Yuz-Bashi - 중위
Dzhivachi - 대위
Karaul-begi - 소령
Mirahur - 중령
Tok-Saba - 대령
Datkho - 소장
Parvanchi - 중장
1. '캅카스' 에미르 기병 근위대
1. 카자크 '테레그' 연대
2. 카자크 '쿠반' 연대
3. 카자크 '아랍' 연대
4. 카자크 포병
5. 카자크 군악대
러시아 제국으로 부터 도입한 카자크 병과. 테레그, 쿠반, 아랍(또는 튀르크)등 3개 연대가 있습니다. 무장은 러시아식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테레그 연대는 에미르가 기병 장군이었기 때문에 테레그 연대가 가장 정예 부대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카자크는 기병 근위대였기 때문에 에미리트 국고에 의해 보급되었습니다.
테레크 연대는 올드 카간(Old Kagan)에 주둔했으며, 약 900명의 대원이 각기 다른 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부사관은 모신나강 소총이나 영국식 소총을 가지고 있었고, 대원들은 베르단 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카트리지는 러시아 타입의 벨트나 소위 "아프간"이라고 불리는 영국-인도 모델의 가죽 "트라이앵글"에 착용되었습니다.
쿠반 연대는 올드 카간과 기차역에 주둔했습니다. 연대에는 약 360명의 병력이 있습니다. 연대의 4분의 1은 (모든 부사관 포함) 모신나강 소총으로 무장했고, 나머지는 베르단 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아랍 연대는 옛 부하라의 성문에 주둔하고 있는 100명, 카지 칼리얀 정원에는 200명으로 분리되어 주둔 했습니다. 최대 500명까지 병력이 혼합된 연대이며, 부하라 시민인 튀르그족으로 구성된 연대는 카르시, 구자라, 크레키켈리프, 부달리크, 테르메즈 등의 지역에 주둔했습니다.
2. 에미르 근위대
세케르데 "세르바차" (제1연대) :
1. Сарбазы(병사)
2. 로브를 입은 Сарбазы
3. 참모 장교
세케르데 "튀르크바차"(터키 연대) :
1. Сарбазы
세케르데 "아랍바차"(아랍 연대) :
1. Сарбазы
2. 코트를 입은 Сарбазы
1918~1919년 부하라 군은 세 개의 호위 연대(세르케르드) - "세르바차", "투르크바차", "아랍바차"로 확대되었습니다.
호위 연대는 스타라이 마하사에 주둔했습니다. 이 연대는 해체된 "드질료" 회사로부터 믈로바차의 의용병들로부터 결성되었습니다. 병력은 약 천 명 정도였습니다. 병과는 기병과 보병이 있지만, 기록에 의하면 병사들이 행군하거나 말을 타기도 했지만, 모든 병사가 기병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아니면 이 연대에 특수 기마부대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무장은 모신나강 소총입니다.
투르크 연대는 많은 연구자들이 보는 부하라군 최고의 부대라고 합니다. "Sirbazy-Piada"로도 알려진 이 부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캅카스와 페르시아 전선에서 영국군에 의해 와해된 군대와 러시아에서 탈출한 오스만 제국 포로들을 규합된 연대입니다. 그리고 약 60-70명의 아프간인과 150여명의 사르트 및 키르기즈가 있었습니다. 이 연대의 병역은 10명의 터키 장교와 1.250명정도라고 합니다. 무장은 리엔필드 소총과 기관총 3정으로 무장 했습니다.
아랍 연대는 400명의 병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주류 민족은 아랍계 민족이 아니라 아프간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장교
1. 상급 장교 하계 군복
2. 상급 장교 군복
3. 참모 장교 하계 군복
4. 참모 장교 군복(제복)
5. 장군 군복(제복)
4. 보병
Сарбазы(병사)
1. 하계 군복
2. 군복
3. 열병식 제복
보병 제복의 일부 변형 :
1. 병사
2. 경찰
군대에는 사르바즈(Сарбазы) 10개 대대가 있었는데, 각 대대는 4개 중대였습니다. 에미리트군은 '토요일'과 '화요일' 두 요일로 나뉘었습니다다. 토, 일, 월에는 토요일. 수, 목에는 "토요일" 남자들을 섬겼다. 오전에는 2시간 동안 집회를 열었고, 나머지 하루는 경비 임무에 흡수되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토요일이라고 명명된 3개 대대는 Krnka 소총과, 베르단 소총 II로 무장했습니다. 병사들은 막사에 복무했지만, 일부는 동네 여관에서 복무했다고 합니다. 병사들은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군복무로부터의 자유 시간이 허용되었습니다. 병사들은 평범한 민간복으로 갈아입고, 대체로 신발 수선이나 다른 작은 공예품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에 종사하고 했습니다.
월급은 한 달에 20텡게(루블 3개)를 받았고, 군복이 급여의 일부로 지급되었습니다. 만약 막사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했을 때, 하루에 10명당 한 그릇의 죽을 받았다고 합니다.
5. 부하라 경찰
1. 여름 제복
2. 겨울 제복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에미르는 경찰을 적극적으로 창설했습니다. 경찰은 러시아 경찰에게서 제복을 도입했습니다. 경찰들은 나강이나 불독와 같은 리볼버 권총으로 무장했지만, 브라우닝과 같은 자동 권총으로 무장한 경우는 드물게 있었다고 합니다. 카트리지 파우치는 아프간식으로 착용했지만 소수의 파우치는 러시아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부하라 에미리트군의 제식화기들. 이중 리엔필드와 빅커즈 기관총, 호치키스 기관총은 1920년 러시아 내전 당시 영국-인도 제국으로 부터 지원받은 부하라 말기 때 받은 무기라고 합니다.
볼셰비키의 부하라 점령 사진들.
부하라는 부하라 공산주의자들과 볼셰비키의 공세로 일주일 만에 함락되면서 부하라 에미리트는 멸망합니다. 이후 부하라 에미리트 잔존병들은 게릴라가 되어 바스마시 운동을 일으키고, 1930년대에 완전히 끝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