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won/Serafin2024. 8. 7. 22:14

Serafin

신파가 왜 지금도 생명력이 있는가

K新波2022/05/2401:44 2 -

원래 이사를 오면 정상화되는 데에 3개월 정도는 걸립니다.


그러므로 서두르지 않고, 매주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을 다 따라 가기보다는 원론적인 이야기에 집중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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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카테고리 이름에 한자만 고집하지는 않겠으나, 한글은 가급적이면 쓰지 않으려 합니다. 뭐 딴 이유는 없고 그냥 그렇습니다.


옛날 이야기들을 "고설" 이라 하려 했다가 K신파라 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대부분 일본 이야기이겠으나, K신파라 함은 변종신파도 다루기 위해서입니다.


기실, 멜로드라마는 옛날옛날 희랍의 안티고네 이야기에도 있었고, 부부의 세계도 원작은 희랍의 에우리피데스가 쓴 "메데이아"를 영국에서 현대식으로 고친 것을 다시 번안한 것입니다.


그러니 신파 이야기에 나오는 고민들은 인류가 생길 때부터 있었던 이야기들입니다. 애당초 신화라는 게 당시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쓸 수가 없으니 신들의 이야기라고 빗대놓고 이야기한 것이니만큼, 신화들이 생겨나던 수천년 전에도 지금과 같이 온갖 치정과 막장이 이어지고 있었던 게 인류라는 종의 운명인 것입니다.


신파는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행동들이 과장되고 스토리도 막장스러워졌지만, 어쨌든 고대로부터 사람의 마음을 작극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좀 표현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지 한국에서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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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나의 죄" "젖자매"(아이 바뀐 이야기들의 원조) 나, 지난 번에 이야기하려 했던 마츠모토 세이초의 "안개 깃발"의 모티브(다만 완전히 가져온 것은 아님) 가 된 "독초" 라는 소설을 쓴 기쿠치 유호는 (이 중 나의 죄는 전에 이야기한 적 있고 나머지는 기회 되면 이야기하겠으나 그리 급하게 소개할 생각은 없습니다),


19세기말 영국 소설을 번역하던 사람이었고,


오자키 고요의 "금색야차"도 미쿡 녀자 작가의 통속소설에서 모티브를 땄던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원작 소설을 읽어 보긴 했는데 금색야차와 같이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 일본 신파극이라고 하나, 전에 말했던 막부시대 후기의 인정물 (1805-1830년 사이의 에도 서민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들) 과 서양 통속소설을 일본인들 입맛에 맞게 변형한 것의 혼합물이 일본 신파극인 것이고,


한국인들은 이것이 들어온 게 일제시대 초기다 보니, 구성진 가락에 맞추어 "것이었다 것이었다 것이었다" 하는 변사의 과장까지 겹쳐 오히려 이것이 일본보다 한국에서 신파가 더 오래 살아남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더우기 일본에서 신패는 일로전쟁의 승전으로 우리도 강국이다 하면서 사라져 갔지만 (다만 그 감성은 에도시대부터 내려오는 거라 쉽게 사라지진 않았음),


한국은 냉정히 말해 2000년대 중반까지 여러 가지 큰 일들이 계속 일어나면서 자부심 부릴 일이 적었기 때문에, 좀 잘살게는 되었으나 2000년대 후반에서야 신파 감정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2008년까지만 해도 "너는 내 운명"에서 림윤아가 골수를 생모를 줄것이냐 시모를 줄 것이냐 하는 신파적 이야기가 당당히 아이돌을 기용하여 나왔었습니다. (지금도 막장드라마들은 있으나 그래도 전보다는 신파적 감정이 사라짐)


그 대신 K신파로 진화하여, 유튜브 시대에 맞는 신파감정을 해외에까지 전파하고 있습니다.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조연상을 준 "미나리"도 영어만 쓰고 자란 아이작 정이 쓴 K신파를 미쿡에 재수입하려는 움직임이다 보겠습니다.


아이작 정의 성장 과정은 잘 모르겠으나, 조부모는 신파에 빠져 살던 시대 사람이었을테니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을 것이고, 맨날 보고 듣는 이야기와는 좀 다른 면이 있으니 이거 팔리겠다 하고 K신파를 영어권에 보급하려 한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아이작 정은 신파가 기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감성이고 본래 일본의 신파도 영어권에서 수입해 온 것이다 이런 사실은 인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1920년대까지만 해도 책값이 매우 비쌌습니다. 노자영의 연애편지집이 하루 50권 팔렸는데, 당시 최고 베스트셀러였고 그걸로 성북동에 저택을 샀습니다.


그러나 그 떄 이야기했듯이 그건 유학갈 수 있는 돈 있는 사람들 보라고 쓴 책이고 서민들은 "딱지본" 이라는 책을 즐겨 읽었습니다.


딱지본은, 저작권 없이 삼류 출판사들이 싼티나는 표지로 5전(당시 한끼 식사 값이었음)정도 값으로 촘촘한 활자로 펴낸 책들인데, 처음에는 장화홍련전이니 하는 조선 고전소설을 펴내다가, 후반에는 중국기담, 일본 통속소설 등을 적당히 조선식 이름으로 고쳐서 싸구려로 팔아 먹었습니다.


이 딱지본의 텍스트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됩니다. 문체도 고풍이고 인쇄의 질도 좋지 않아 학자라는 것들이 진득하니 앉아서 읽을 만한 퀄리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표지들이 B급감성을 자극하여 그거 연구한 자들이 좀 있을 뿐입니다.


이 딱지본은 1920년대 후반 사라졌다가, 1940년대 초 물자통제로 책들이 더 나오지 않게 되면서, 창고에 있던 딱지본들이 다시 나와서 1950년대 초까지 통용되었다고 합니다 (1950년대 초만 해도 장터에서, 1910년대에 쓰여진 리인직, 최찬식 등의 신소설들이 딱지본으로 팔렸다는 증언들이 있습니다.)


죄선어로 된 새 글이 더 이상 나오지 않으니, 1940년대 사람들은 접하지 못했던 1910-20년대 초기의 딱지본들이 다시 나온 것입니다. 당시 일본어를 볼 줄 알던 젊은 계층들은 보지 않았겠으나, 그런 사람들은 비교적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면, 심훈의 상록수도 우스운 소설입니다. 상록수의 주인공이라는 최용신이 농촌에서 조선문자를 왜 가르칩니까? 일본어를 가르쳤어야지. 일본어를 못 보니 딱지본 밖에 읽을 게 없었죠.


이를 끝낸 게 바로 정비석 선생의 "자유부인" 입니다. 정비석 선생은 문호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데 이 분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고,


어쨌든 k신파는 인간의 감성을 자극하는 바가 있어 그 유래가 의외로 깊고, 욕은 할 수 있어도 없앨 수는 없다 라는 말로 k신파 코너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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