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won/goola2024. 6. 5. 23:00

신파 - 이인정(二人静)

넷플릭스에서 오적어게임이라는 드라마가 했었다고 하는데 나는 넷플릭스를 보지 않으므로 어떤 건지 잘 모르겠으나,

보아 하니 돈을 갖고 게임한다는, 라이어 게임이나 카이지 비슷한 드라마인 것 같은데,

마지막이 '신파' 로 끝났다고 하더군요.

승리호도 유명한 신파영화였고, 오적어게임도 신파로 끝나는데, 신파가 나온 지 100년이 지났으나 적어도 신파는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왜 살아 남은 것 같습니다. (귀멸의 칼날 극장판도 신파이지만 이건 시대극이고 신파가 대유행하던 시절의 이야기니 오히려 고증에 충실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오랫만에 옛날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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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야차'를 '장한몽' 으로 번안한 조중환이, 전에 이야기 한 야나가와 순요의 '의붓자식'을 '단장록' 이라고 번안한 것이 있는데,

놀랍게도 이게 매일신보에 살아 남아 있더군요. 끝회가 유실되긴 했지만 이 당시 소설은 끝회는 단행본에서 보라 이런 체제였으니 어쩔 수 없고, 의외로 문체가 아래아만 넘기면 현대적인 문체로 봐도 손색이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 한 얘기 또 하려면 1년은 있어야 하니 내년 1월후에 하고,

오늘은 순요의 다른 작품 '후타리시즈카' 를 논합니다.

후타리시즈카는 일본의 들풀로, 한국에도 거제도 일대에 자란다 하더군요.

본래 '시즈카'(한국에서는 '꽃대') 는 요시츠네 이야기에 나오는 무희 시즈카 고젠이 춤추는 것과 같은 모양이다 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느데, 풀 하나에 줄기가 2개 나오는 것이 있어 두 개의 시즈카다 하여 후타리시즈카라 하였고 현대 일본에서도 가끔 사용되는 호칭입니다.

한국에서는, 거제도 옥녀봉에서 제일 처음 발견되었다고 옥녀꽃대라 하는데, 옥녀꽃대의 전설도 신파적이므로 잠깐 소개 합니다. (일설에는 이 옥녀봉은 거제가 아니라 통영이라고 하지만, 거제나 통영이나 그게 그거죠.)

거제도(혹은 통영 사랑도라고도 함) 의 섬마을에서, 옥녀 라는 녀자가 아버지 (혹은 의붓아버지)와 살았는데,

옥녀가 15살쯤 되자, 아버지 (혹은 의붓아버지)가,

그 동안 키워 줬으니 이제 옥녀와 섹스를 해야겠다고 달려듭니다.

그러자, 옥녀는 정조를 지키기 위해,

정 섹스가 하고 싶으면 소대가리 탈을 쓰고 소 울음 소리를 내면서 네 발로 봉우리를 기어 오르라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정말로 아버지(혹은 의붓아버지)는,

정말로 어디서 구했는지 소 탈을 쓰고, 소 울음 소리를 내면서 네 발로 봉우리를 기어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이 꼬라지를 본 옥녀는 봉우리에서 투신자살하고, 그 후로 이 봉우리를 옥녀봉이라 부르게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혹은 의붓아버지)가 그 이후에 섬에서 살 수 있었겠습니까. 바다에 집어 넣지 않았으면 다행이지.

나이든 남자의 욕정을 조심하라고 나온 전설인 듯한데, 하여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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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타리시즈카 (이하 '이인정')는, 야나가와 순요의 마지막 걸작으로, 죽기 1년 전인 1917년 나온 소설입니다.

이인정은 일본 영화사에는 나름 중요한 작품인데, 1917년판(현존하지 않음) 에는 여자 역을 가부끼 식으로 남자 배우가 연기하였으나,

1922년 판(현존한다 합니다) 은, 일본 영화사에서 최초로 여배우가 나온 영화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도 얄궂은 것이, 당시 '여주인공' 역을 독식했던 남자 배우 다치바나 데이지로가, 얼굴을 하얗게 하기 위한 가루에 든 납 중독으로 죽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형도 같은 이유로 죽었고, 그래서 오래 살지 못한다 판단하고 아주 방탕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가 죽은 후 그보다 '예쁜' 여성역을 할 남자 배우를 찾지 못하여, 어쩔 수 없이 여배우가 영화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책은 앞권이 사라져서 뒷권만 있으나, 다행히 영화의 내용을 정리해 놓은 글이 있어 그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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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정은 화족 가문인 시부에 가문의 일을 다룬 이야기인데 정확히 어떤 작인지는 앞권이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시부에 가문의 시조는 명치유신 때에 크게 활약하여 화족이 되었는데,

가문의 족보가 이상하게 꼬인 탓에, 1916년 당시 대를 이을 자식은 오로지 테루오 한 명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극화를 예상하고 쓴 작품이고 (저자는 가정소설의 고전 '불여귀'(그나마 좀 알려진 책이므로 이 책은 논하지 않습니다)을 극화한 경력이 있고 이후에도 연극계에 많이 관여하였음) 그래서 극적인 면이 많은데,

테루오는 이 유명한 가문을 이어야 하지만, 의무를 망각하고 술에 취해 살았으며,

창기인 '나미지'(浪次, '눈물의 길'이라는 淚路 라고도 해석이 가능) 와 사이에서 아들 세이이치를 낳았습니다. 나미지는 친척도, 성명도 없는 아주 비천한 녀자입니다.

가문을 테루오가 이어 받아야 하지만, 아무리 엎어치고 메쳐도 테루오는 깜이 아니었습니다.

그러자, 테루오의 외삼촌인 무라바야시는, 기발한 지략을 생각해 내는데,

첫째는 테루오를 , 조부의 지인인 키요후지의 딸인 미에코와 결혼 시키고,

둘째는 세이이치를 이들의 자식으로 삼아, 세이이치에게 다음 작위를 물려 준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창기 나미지의 아들인 세이이치를 테루오와 미에코 사이에서 태어난 적자로 주작한 후, 테루오를 건너 뛰고 세이이치에게 작위를 물려 받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뭐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중요한 건 가문의 유지였으므로 이런 것도 가능했었던 모양입니다 (시제로 알려진 것과 생모가 다른 화족들이 좀 있었던 걸로 압니다).

작위를 탐내는, 이 집안의 원수인 모로오카 자작이 있었고 ,

또한 키요후지도, 미에코가 카라사와라는 의새와 동거하여 , 낙태를 거듭한 끝에 불임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결혼에 허락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세이이치의 어미인 나미지가 녹녹치 않은 인물이라,

내 애만 뻇어 가려고 하느냐, 나에게도 몫을 주어야 한다 이렇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렇다고 모자간에 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후편을 다 보았으나 나미지와 세이이치가 만나는 장면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렇게 느와르 물처럼 진행되는 스토리인데, 결국 시부에 가의 협상을 담당하던 외삼촌 무라바야시는, 나미지의 모든 요구를 들어 주어, 나미지는 아들을 '팔았습니다'.

유약한 테루오는, 자신의 의사와 아무 상관없이 이 모든 일이 행해지자, 외삼촌과 어머니의 명으로 미에코와 결혼하지만, 미에코의 과거 사정을 알게 되자 에이 씨바 하고 북해도의 지인이 여우를 기르는 곳으로 갑니다 (당시 일본은 시베리아에 출병할 생각으로 방한복을 만들기 위해 여우를 많이 사육했음)

그러자 미에코는 , 세이이치를 데리고 북해도까지 찾아 옵니다.

한편, 미에코의 옛 애인 카라사와도, 테루오를 좆되게 하고 미에코를 데려갈 생각으로 북해도까지 쫓아와, 협잡질 끝에 테루오와 지인을 망하게 하였습니다.

모로오카 자작은 이제 시부에 가문을 먹을 차례다 하고 움직이고, 카라사와와 , 미에코의 아버지 등등도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움직이지만,

이 난마와 같은 상황은, 신파 답게 어이없이 해결되는데, 나미지의 후배 창기가 모로오카의 3남을 유혹하여, 모로오카의 음모 계획을 밝히고 이것을 나미지가 미에코에게 알림으로서 모로오카의 책략이 폭로되고 정해진 대로 세이이치가 가문을 이어 받아 새 작위 습작자가 되며, 이 모든 걸 본 나미지는 더 얼쩡거려 봐야 자식에게 도움이 안 되므로 사라진다는 결말입니다.

영화판에서는, 전해지는 바로는 스토리가 너무 복잡하여 당시 기술 수준(당시에는 60분 내에 모든 이야기를 전해야 했음) 에 맞게 좀 약화시켰는데,

나미지가 세이이치를 시부에 가문에 넘겨 주는 것까지는 위와 같으나, 모로오카와 카라사와가 의기 투합하여 카라사와가 북해도에 간 테루오와 그를 쫓아 간 미에코, 세이이치를 죽이러 엽총을 들고 가고,

이 사실을 안 나미지가 거기까지 쫓아가, 북해도 설원에서 (당시 기술로는 야외촬영이 안 되어서, 도쿄의 어느 창고를 빌려서 눈이 온 것처럼 대충 그려놓고 찍었다 전합니다) 카라사와가 테루오 등을 쏘려고 하자, 카라사와와 싸우다가 테루오 등은 도망가고 나미지는 총에 맞아 죽는다는,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전개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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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복잡한 가문 스토리를 대단히 좋아하는데 한국은 일본 걸 빌려와도 단순화시키고 열화시키는 것이 많더군요.

이 이야기도 가문을 이어 받을 테루오가 부실하니, 사실상 소설판이나 영화판이나 성도 없는 천한 창기 나미지에게 여러 집안들이 놀아 나는 이야기이며,

나미지는 자식을 팔아 먹고, 자식이 귀족 가문을 이어 받게 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며, 주위 사람들은 나미지가 가진 셍이치라는 협상 카드 떄문에, 모두 끌려 다니다가 끝난다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사실 당시 일본 상황을 다룬 책을 나는 많이 읽었으나 (소개할 만한 것이 나오면 소개하겠음),

이 경우 대부분 모로오카 쪽이 이기지 나미지 쪽이 이기는 경우는 적고, 테루오의 외삼촌 무라바야시도 모로오카가 이 집안과 그렇게 원수진 사이가 아니었으면 모로오카의 아들로 양자를 하여 대를 잇는다는 원래 계획을 받아 들이거나, 혹은 미에코의 아버지 기요후지가 생각한 대로 미에코의 남동생으로 대를 잇게 했을 것이며,

이런 상황을 잘 파악해서, 어쨌든 유명한 가문에 자기 핏줄을 집어 넣은 데에 성공한 나미지가 어느 쪽이든 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이라고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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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려서부터 집안 싸움을 하며 자랐습니다.

패자에게는 죽음 밖에 없다는 것이 집안 싸움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재미 없어 하시더라도 나는 이런 이야기를 기회 되면 할 것이며,

추석은 가족과 함께 하지만 나는 가족이 없고 돌아갈 곳도 없으므로, 이런 이야기로 추석 성묘를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 2021-09-21(05:03) : 
Posted by 李蘭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