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afin
서명응의 백두산 기행
魏晋2022/06/2506:18 11 -
서명응은 조선의 대신으로, 실학자 서유구의 할아버지이지만 아무래도 서명응에게 제일 유명한 것은 1766년 죄선인으로 처음 백두산을 오른 사실입니다. (저는 평소에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표기하는데 본 글에서만 백두산이라 하겠습니다.)
그런데 혼자 간 게 아니라, "조엄" 이라는 사람과 함께 갔습니다. 조엄은 일본에서 고구마를 들여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서명응은 기억도 안 나는 사소한 일로 함경도 어디로 귀양을 가게 됐는데 마침 조엄도 함경도의 다른 지역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기 때문에, 가는 길이 같아서 함께 호송되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백두산 부근까지 오자, 기왕 예까지 왔으니 백두산이나 구경하다 가자 하고 등정했으며,
이들은 죄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이들을 호송하는 포졸들과, 이들이 한성에서 데려온 하인들도 같이 등정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눈에 봐도 죄인들의 행적이라고 볼 수 없는 행동들입니다.
이들이 등반을 마치고 읍성에 돌아오자 이미 한성에서 귀양이 풀렸으니 돌아오라는 파발이 와 있었다고 합니다. 즉 이 사람들에게 백두산을 등정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일부러 귀양을 핑계로 북쪽으로 보낸 것이라 보는데 (청나라의 눈치도 봐야 하니),
리중환의 택리지를 보면, 살 만한 곳이 어디어디라고 나열했는데 거의 다 삼남지방이고, 예의상 예성강쪽 (연안, 개풍쪽) 과 죄선왕조의 개창지라는 덕원(원산부근)을 언급했을 뿐이지 남한에서 번화한 지역들과 거의 일치합니다.
그리고, 함경도는 함흥 이북에는 거의 언급이 없으며, 평안도도 사행길 (쥐나로 들어가는 길) 외에는 거의 언급이 없습니다.
즉 리중환은, 경의선 동쪽과 함흥 이북은,
사람이 살 곳 자체가 못 된다 라고 반단했던 것입니다.
함흥은 리성계의 조상이 살았다고 하니 언급을 안할 수 없으나 그 북쪽은 그냥 간단히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백두산 정계비로 토문강 (일통하)동쪽이 조선영토로 편입되었으나, 막상 조선인들은 살기가 정말 힘들어진 죄선말기에나 그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지 그 이전에는 넘어간 경우가 드문데,
이는 문자 그대로 wild wild west였기 때문입니다.
만주웨스턴 (1930년대경을 바탕으로 만주 (정확히는 공터 어디 빌려서 대충 만주라고 우긴) 에서 벌어진, 일본군 , 쥐나인, 죄선인 (독립운동가와 마적 사이 그 어딘가에 있는) 들이 총질하고 다니던 싸구려 영화들) 이 현실이었던 거야요 우하하.
사람이 따뜻한 곳에 살고 싶지 추운 곳에 살고 싶겠습니까?
비록 서명응이나 조엄이 유명한 양반들이라 할지라도 , 그쪽까지 가면 그들도 생사를 보장할 수 없으니, 귀양이라는 형식을 빌여 군졸들, 포졸들이 호송해야 겨우 백두산까지 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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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영국 귀족들이 17--19세기초 철도가 나올 떄까지 유럽을 평생 한번 여행하던 The Grand Tour에 대한 연구도 오래 전부터 해왔습니다. 다만 이야기할 기회가 없어서 하지 못했을 따름입니다.
이 외에도 제가 이야기하지 않는 주제들이 좀 있는데 그건 제가 오래 살아야 다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1840년대인 몽테크리스토백작 후반부에 , 악역인 알베르 드 모르세프와 그의 친구 프랑즈 (이 둘의 관계가 애인관계처럼 묘사되어 있어 알베르도 똥꼬충인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로 인해 이 작품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아예 커플로 묘사하더군요), 가 이태리를 여행하다가 산적의 공격을 받았고, 백작이 이들에게 접근하기 위하여 일부러 사람을 붙인 후 자기 부하들을 보내 구해 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랜드 투어는 유럽을 여행하는 코스이지만, 옛날의 북경 호송길이나 조선통신사와 같이, 정해진 코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 전용으로 운영되던 여행사가 있었고,
제가 "성지순례" 시리즈를 할 떄에 성지순례를 할 때면 (당시는 팔레스타인은 튀르크령이었음) "드라고만" 이라는 가이드 (이들은 튀르크인, 아랍인, 유태인, 백인 등 가지가지였으나 튀르크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음) 들이 이들의 모든 보안, 식사, 여행과정을 책임졌다 라고 말한 바도 있습니다. 모든 코스는 드라고만이 정한 대로 가야 했고 자유여행을 하면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왜?
거의 대부분의 동네의 치안이 개판이라 그랬습니다 우하하. 그래서 정해진 코스로 갈 수밖에 없고 그 코스로 가는 데에 대한 모든 보안비용은 여행자가 지불해야 했으니 상류층 아니면 여행 자체를 못했습니다.
그나마 로씨야가 치안이 잘 된 편이라 (매우 아이러니한 면입니다만 로씨야는 법령이 험악하고 몽골시대에 내려온 제도가 아직도 그때까지 쓰이고 있어서 치안이 로씨야혁명 이전에는 잘된 편이었음) 마차를 타고 귀족들이 여기저기 다니는 게 가능했지 다른 나라들은 귀족들이 고향 갈 떄도 다 정해진 코스 외에는 못다녔습니다. 일본도 참근교대로 영주들이 에도 오는 코스가 다 정해져 있었습니다.
성자의 진영 시대가 되면 전세계가 다시 이 시기로 복귀하는 겁니다 우하하.
신안, 완도, 고군산군도 다 똑같이 위험하나,, 옛날부터 섬이라는 곳은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섬 자체는 그 자체의 유력자가 왕과 다를 바 없었기 떄문입니다. 이태리의 사르데냐 섬은, 사보이왕조(공식국명은 사르데냐왕국)가 존재하던 1946년까지도 봉건제를 그냥 유지했습니다. 거기 유력자들이 다 사보이왕조 왕족이나 주 지지자들이어서 그랬습니다. 사보이왕조가 2차대전 이후 무너진 후에야 좀 나아졌는데, 지금도 여행객들이 시칠리아는 많이 가도 사르데냐는 거의 안갑니다.
완도 사건 자체는 알려진 것보다 더한 내막이 있을 것 같으나, 그와 상관 없이, 세상이 무너지면 옆동네 가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말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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