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客論, discuss a blog2022. 7. 14. 21:03

저자: 드미트리 플롯니코프(Дмитрий Плотников)

1979년 10월 6일, 대한민국 대통령의 관저인 청와대에서 박 대통령 자신과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등의 지배엘리트의 크렘린의 모인 비공개 만찬이 열렸다. 

만찬 회동의 내용은 가장 중요한 국정에 관한 것이었다. 부산에서 학생 폭동이 한창이었다. 김재규는 유죄로 판결을 받었고, 대통령은 그에게 개인적인 모욕이나 욕설없이 폭억을 퍼부었다. 모욕감을 느낀 김은 식탁에서 나와 같은 건물 2층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로 올라가 개인 무기를 들고 식당으로 돌아와 박과 경호실장을 쐈다.

이로써 공식 설명에 따르면, 아마도 한국 대통령들 중 가장 빛나고 논란이 많은, 현대 대한민국의 견고한 토대를 마련한 대통령의 생애가 끝났다고 한다.

권력의 길


훗날 '한국의 피노체트'로 불리게 된 이 남자는 화려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다소 지루하게 시작되었다. 미래의 대통령은 1917년 대농민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 대학에 입학하여 3년 동안 가르쳤다.

그러나 1940년에 급격한 전환이 일어난다. 박은 일본군에 자원하여(한국은 일본 제국의 일부였다) 성실히 복무하여 다카기 마사오라는 이름으로 만주의 장교 과정에 중위로 보내져 전쟁이 끝날 때까지 복무한다. 그의 전기에는 이 기간에 대해 알려진 것은 거의 없으며, 한국 공화국에서 일본은 공식적으로 민족 차원에서(이는 욱일의 땅이 무역에서 공화국의 두 번째로 큰 무역 파트너가 되는 것은 막지 않음) 싫어하며 일본 무장 조직에서의 복무는 협력과 동일시된다.

대한민국 육군의 박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의 만주 복무는 남한과 북한 모두에 널리 퍼진 다소 흥미로운 전설이 있다. 사실 만주에서의 군사작전은 기본적으로 반게릴라 성격을 띠고 있고, 알다시피 그 지역의 빨치산 중 하나는 김일성의 지휘를 받은것으로 알려져있다. 전장에서의 그들 개인적인 만남의 신화는 두 한국간의 갈등의 비타협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대 연구자들은 이 명백한 선전 이야기를 뒷받침할만한 역사적 사실이 없다는 데 동의한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박정희는 미군이 창설한 대한민국 군대에서 경력을 쌓으며 40년대 후반에 좌익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48년에는 여수에서 일어난 폭동에도 가담하여 군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박은 이승만 대통령에 구명했고 그는 사면령에 서명했고, 박씨는 회개의 표시로 공산군 장교 명단을 제공했으며 그중에는 자신의 형의 이름도 있었다. 이후 박정희의 좌익 과거는 철저히 은폐되었고, 70년대 초 연재물을 올려 부각시키려 했던 미국 언론인 엘리자베스 폰드(Elizabeth Pond)는 한국 정부에 의해 추방됐다. 지금도 한국 연구원들은 박장군의 이 민감한 주제를 기피한다.


언뜻 보기에 반공 독재자의 초상은 다소 이상하게 보인다. 그는 점령군과 협력했고 어떤 식으로든 남한의 좌파 운동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군 장교단에서 채택한 무사도 강령과 특히 농경지의 전통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 장군의 모든 이론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었다.

축출된 윤보선 대통령

그리고 장군은 거의 우연히 권력을 잡았다.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는 그를 일종의 타협적 인물인 '다크 호스'(dark Horse)였기 때문에 임시 군사정권의 지도자이자 1963년 대선 후보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말은 성질이 급하고 동료보다 밝고 똑똑하여 그의 손에 힘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특이한 것은 없다. 같은 방식으로 한 레알 마드리드 팬은 거의 40년 동안 스페인의 카우디요가 되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호랑이의 각성


1960년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1인당 GDP는 80달러였다. 경제지표는 최근 탈식민지화로 독립한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나이지리아 등) 수준이었다. 한국 기성세대의 기억은 현대 북한의 탈북자들의 이야기를 연상시킨다. 불규칙한 전력 공급과 굶주림, 수도 서울에서도 가정의 70% 이상이 하수도가 공급되지 않았다. 국가기관은 모든 국민에게 극도로 부패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있었으며 정부의 독립적인 대외 및 국내 정책이 없었습니다. 예산의 절반은 미국의 재정 지원으로 구성되었으며 실제로 미국 국무부의 외부 통제 하에 있었다.

박 자신은 나중에 국가의 상태가 그에게 파산한 회사를 생각나게 했다고 회상했다. 물론 한국의 모든 책임을 초대 대통령 이승만에게 돌리는 것은 아니다. 엄청난 수준의 부패와 권력 남용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패한 경제 정책이나 의식적인 사업 반대보다 행동하지 않은 것에 책임이 더 크다.

옛 서울


스스로 판단한건데, 그의 시작 조건은 공산주의자들보다 훨씬 나빴다. 일제강점기 동안 희토류를 포함한 광물과 금속의 풍부한 매장량으로 인해 주로 북부 지역에서 산업 기반이 만들어졌다. 다시 말하지만, 중국은 산업화된 전선과 중국 전쟁 포로들의 값싼 노동력이 많이 필요한 전선이 격렬한 곳이 그곳이다.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주체 정권는 준비괸 산업 기반을 얻았지만 반대로 남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시작해야했다.

경제 성장은 박정희에게 생존의 문제였다. 외국 투자를 유치하고 사회적 긴장을 완화시키며, 궁극적으로 국방력을 강화할 수 있었고, 이는 정권의 정당화에 기여할 것이다. 1961년에 박은 북한의 경제 발전 계획을 다룬 북한 선전 영화를 손에 넣었다. 그것을 본 후 그는 공산주의자들을 "따라잡아 추월"하기로 결심했다.

박정희는 '관리 자본주의 경제'. 즉 국가자본주의의 원칙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의 경제 모델은 세 가지 기둥, 즉 농촌을 희생시킨 중공업의 강제적인 개발, 수출 지향 ​경제, 시장 과정의 국가 규제였다. 이웃 일본의 경험을 공부한 박은 한국을 공장 국가로 만드는 방향을 결정했다.

산업화 계획은 간단하고 우아했다. 정권은 외국 원자재 면허 및 특허 (주로 조립품)을 통해 외국 원자재로 작업하는 공장을 건설하는데 사용 된 외국 대출을 적극적으로 받았다. 한국 정부는 공장을 적극적으로 사들였다. 공장의 제품은 수출되어 외화의 유입을 제공했으며, 통화는 새롭고보다 기술 집약적인 특허 및 원자재에 사용되어 산업을 심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전국의 수많은 시찰 투어 중 하나


1960년대 박정희의 개혁 초기에 경공업 제품이 한국 수출의 약 절반을 차지했다면, 1970년대에 급성장하는 경제는 자본집약적이긴 했지만 야금, 조선, 화학 산업과 같이 기술적으로 가장 복잡한 산업이 이었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야금 공장은 한국 조선소에 대량의 값싼 원자재를 제공하여 한국이 80년대 초까지 세계 무역선의 3분의 1을 생산할 수 있게 했다.

80년대에는 생산 기술의 발달로 박정희 사후 한국이 여전히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과 전자 산업과 같은 지식집약적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주었다. 화학과 경공업의 발달로 전체 기술 체인을 채택할 수 있게 되어 수입 의존도가 크게 감소하고 한국 제품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중공업의 성장은 주로 남한의 방위산업체와 관련이 있으며, 1960년대 초 자체 자본으로 하수도를 충분히 제공할 수 없었던 한국이 1970년대 후반에는 미국의 강력한 요구때문에 중단되었던 핵무기를 확보하기 위해 활발한 과학 연구를 수행했다는 사실이 그 성공을 입증한다.

산업이 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가 변하고 있다. 먼저 한국인의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태도가 크게 교정되었다. 한국의 전통 사회에서 무역은 단 한 번도 권위있는 적이 없었고, 이승만 정부의 국가기관의 부패로 인해 부정적인 현상이 심화되었다. 단순히 한국인에게 있어 횡령과 절도는 거의 동의어였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을 기업가 정신에서 멀어지게 했다. 50년대에는 뇌물을 주지 않고 누구의 후원도 받지 않고 정직하게 성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박 대통령은 경제 발전을 국가의 최우선 과제로 선언했으며, "기업가들"은 경제 활동이 개인의 풍요로움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이익을 목표로 하는 첫 번째 애국자가 되었다.

휴가 중인 박

산업 기술 및 제도적 발전과 관련된 포괄적인 조치의 결과, 낙후된 농업 국가는 불과 10년 만에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 중 하나로 변했다. 그의 집권 기간 동안 연간 GDP 성장률은 6% 미만이었던 적이 없으며 특히 성공적인 해에는 12% 또는 심지어 14%까지 상승했다. 산업 성장은 도시화로 이어졌다. 1960년에서 1985년 사이에 도시 거주자의 수는 4배 증가했다. 사회 문제도 해결되었다. 1965년에는 한국인의 거의 절반이 빈곤 아래로 살았지만 박정희 통치 말에는 10명 중 1명만 살았다. 90년대 초 1인당 GDP는 55배 이상 증가했다.

북한은 남측 이웃의 이러한 성장률에 충격을 받았고 70년대 초반 김일성은 산업 생산면에서 남한이 처음으로 북한을 추월했다는 통계를 접했을 때 단순히 그것을 믿지 않았다. 동시에 공화국은 경제적으로 완전히 부유하게 되었고 미국의 재정 지원이 중단되어 한국은 악명 높은 "워싱턴 지역 위원회"의 모든 단계를 뒤돌아보지 않고 훨씬 더 독립적인 대외 및 국내 정책을 추구할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왜인지 박 대통령의 개혁에 대해 '시장'이나 '자유주의'라는 의견이 팽배하다. 이것은 진실의 완전한 왜곡이다. 그렇다. 한국은 이제 발전된 자본주의 경제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산업이 탄생하는 단계에서 그 경제는 수동제어, 국가 규제와 같은 시스템에 내재된 모든 특성을 가진 조합주의 모델로 오히려 끌렸다. 보호무역주의, 5개년 계획까지. 그러나 한국의 5개년 계획은 국가 계획의 주장뿐만 아니라 경제적인 시장규제 방식, 조세 및 통화정책의 변화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상업은행 설립은 금지되었으며 기업은 국가의 우선시하는 프로젝트에 대해서만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박정희의 개혁이라고 하면 그 유명한 재벌(그 중 하나가 삼성이다)을 무시하기 어렵다. 재벌은 매우 다양한 관심사입니다(위에서 언급한 삼성은 한국군용 무기도 생산한다). 대통령은 개인적으로 유망해 보이는 수십 명의 기업가를 직접 선택했다. 그들은 생산 분야에서 당과 정부의 명령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서약했으며 이를 위해 외국 투자와 대출에 대한 우선적 접근을 허용했다. 따라서 우리는 시장의 주요 거인이 박 장군에 의해 인위적으로 생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독재자


개혁가들은 정부의 시장 문제 개입의 또 다른 우선 순위로 매우 낮은 노동 비용의 유지로 보았다. 노동자의 지위를 바꾸려는 시위는 군대와 경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의 자선사업과 사회 프로젝트를 장려하여 기업이 산업화 첫 해에 받은 초과 이익의 일부를 기업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개혁은 소수의 다양한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직이 수행했지만 박은 모든 결과를 개인적으로 감독했으며 다른 많은 권위주의 통치자와 마찬가지로 "세기의 건축물"을 모두 직접 검사하기 위해 전국을 많이 여행했다.

하지만 단점은? 물론 그들도 그랬다. 주로 불완전한 노동법으로 표현되는 노동계급(사무직 노동자, 지식 노동자 포함)의 다소 어려운 상황 외에 다른 문제도 있었다. 공화국은 엄청난 두뇌 유출을 겪었다. 통계에 따르면 해외에서 공부하거나 인턴십을 한 한국 전문가 10명 중 8명이 귀국하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조국을 찾았다. 또한 강제적인 산업화는 한국의 생태계를 크게 훼손했다. 물론 중국의 공포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피해는 여전히 크다. 서울에도 비가 올 필요는 없다. 또한 일부 경제학자들은 1997년 경제위기 당시 박 대통령과 참모진이 새로운 경제 모델을 만들 때몇 가지 구조적 실수를 저질렀다고 보고있다.

박정희 시대의 남한 경제 모델과 김일성 시대 북한의 경제 모델은 큰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그 차이는 핵심에 있었다. 북한의 경제가 외부의 위험에 직면하여 동원에 기반을 두고 자본가에게 무언가를 증명하려고 시도했다면, 남한은 경제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내재된 동기에 기반하여 스스로를 더 부유하게 만들고 조국을 도왔다. 덕분에 은행 계좌에 원화가 많이 쌓였을 때 조국을 돕는 일은 훨씬 더 즐겁지 않은가?


북에는 주체가 있고 남에는 주체성이 있다.


북한이 주체사상을 발전시키는 동안 남한 역시 민족을 통일할 수 있는 사상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결과 주체성으로 명명되었다. 이 용어는 북한의 이름과 유사하기 때문에 러시아 및 서양 문학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국가 주관주의"라는 용어를 선호한다. 이 주체성은 무엇이며 어떤 소스와 함께 먹는가? 한 번 알아보자.

인격 숭배


6이라는 숫자는 새로운 국가의 아버지들에게 마법처럼 보힌다. 왜냐하면 무스타파 케말의 "6개의 화살"처럼 박은 대한민국 기초를 6가지 기본 원칙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공, 서구지향, 한반도의 두 국가 문제의 강력한 해결, 부패와 '사회악' 근절, '신선한 도덕'의 창조, 그리고 완전한 생산 주기의 경쟁력있는 경제 창출.

반공주의는 박정희의 사상에서 큰 역할을 했다. 제2공화국의 시대는 한국에서 좌익 정서가 절정애 달았고, 반공주의적 수사학을 통해 미국은 남한 정부가 "개자식"임을 미국에 보여줄 수 있었다. 동시에 모든 반대 활동은 "북한"과의 공모로 선언되었고 완전한 대중의 승인을 받아 즉시 진압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북쪽 이웃과의 놀라운 관계를 볼 수 있다. 장군의 통치 기간 동안 여러번 이상 방첩 캠페인을 수행했다. 1964년에는 아시아민족반공연맹이 결성되었다. 박은 서울에 있는 지부를 만들었다. 아시아반공자유센터는 아시아적 특수성을 기반으로 반공 이론을 개발하고 선동가 및 반체제 인사들을 훈련시켰다. 사실 연맹은 어떠한 행적도 없지만, 미국에서 대한민국의 긍정적인 평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는데, 이것은 "붉은 문구"에 대항하는 투쟁의 전초기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장군은 실질적인 행동으로 유명했다. 한국 파병군는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크며 베트남에서 적극적으로 싸웠고 고문, 처형, 대빨치산 토벌과 같은 광신도로 유명했다.

그러나 60년대 중반 이후 점차 반공주의가 퇴색되고 한국의 민족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이것은 공화국의 정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고, 민족주의적 요소는 여전히 남한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우리 민족의 나갈 길》, 《국가와 혁명과 나》에서 마침내 한국 국정에 대한 자신의 비전을 형성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건전한 민족주의적 토대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박정희 정부의 주요 이념 슬로건이다. "한국식 민주주의 건설의 토대는 국력입니다. 민주주의의 꽃이 피려면 국력을 키워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건전한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천 마디 말보다 더 크게 들릴 장군의 명언이다. 그리고 건전한 민족주의와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엘리트의 육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도덕의 새로움"과 "사회적 악덕"에 대한 투쟁을 통해 일어날 것이다.

사실, 민족주의는 주체성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다른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주의의 우선순위는 부인할 수 없었다. 박 장군은 연단에서 "이념은 변해도 민족은 남는다"고 말했다. 조선 민족은 계급과 정당 위에 있다. 조선민족은 바스크 몬드라곤과 같은 거대한 재벌처럼 보이는 하나의 국가 조직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따라서 주체성은 실용적인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임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문화와 민족적 전통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서구의 발견과 융합되어야 하고, 도덕은 전통적이어야 하고, 경제는 현대적이어야 한다. 60년대 한국의 주요 슬로건은 '민족주의 우선주의'와 '경제 우선주의'였다. 그러나 1970년대가 되자 주체성은 변모했다. 박 대통령은 국가사상을 심화하고 개선하기 위해 많은 원탁회의와 학술 토론을 아낌없이 후원했다. 주체성은 보다 발전된 개념인 유신의 개념의 기초가 되었다.

단일 국가의 보수 혁명.

1972년 10월 17일. 박 대통령은 비폭력 쿠데타를 일으켰다. 12월 27일 그는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정치 체제의 탄생을 선언한다. 그것은 유신이라고 한다. 그러나 러시아어 출처에는 "국가 복원 개혁"으로 번역한 것도 있다. 그러나 유신은 보다 정확한 의미이며, 이 의미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개혁이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박 자신이 유신에서 제시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신'이라는 단어도 같은 문자로 쓰여 있다.

박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회 해산, 가장 저명한 야당 인사의 체포와 함께 자신의 국가 재건을 시작했다. 그는 헌법을 개정함으로써 자신의 평생 권력을 보장했습니다. 박은 유신과 메이지 유신 사이의 유사점을 지적하면서, 이러한 조치들은 공화국의 의회와 일본의 쇼군 같은 국가원수와 국민들 사이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유신에 대한 그의 추론은 그의 북쪽 동료인 김일성의 사상을 연상시킨다. 박의 말을 인용하자면 "유신은 어떤 제도도 모방하지 않고 독창적이고 창조적이다…" 즉 국제 관계에서의 유신은 초강대국에 대한 의존을 제거하고 관계를 확립하는 시스템이다. "상호작용과 공존" 즉 즉 우리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는 체제가 구축되고 있다. "유신은 우리의 위대한 자력에 기초하여 안정과 번영, 새 통일역사를 창조하려는 민족의 지적 의지를 창조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되찾고 있는 의식. 여기서도 주체사상 모두 조선민족의 혈육이 창조한 체계의 독창성을 일차적으로 강조하고 거기에 딱 들어맞는다.

국가는 교육을 통해 이 영적 혁명을 수행할 계획을 세웠다. "국가의 힘은 교육에 있습니다. 교육이 나라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박정희의 또 다른 슬로건이었다. 전직 교사였던 그가 시민의 이념 주입에서 학교 제도의 역할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학생과 학생은 권위와 장로에 대한 존경과 같은 "원초적인 민족의 미덕"을 적극적으로 주입했다. 지식과 교육의 숭배가 활발히 추진되었다. 1968년 유럽에서 학생 시위가 있은 후 유신 앞에서 발표된 국가교육령은 '공산주의 건설자의 도덕규범'에 대한 한국의 대응이었다. 그 안에 정부는 언제나 어디서나 민족의 위신을 높이기 위해 싸우고 진취적이고 목적이 있고 전통적인 도덕과 서양의 기술을 혼합하여 이념적으로 확고하고 밤낮으로 새로운 한국인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모두 국가 발전을 위한 것이다. 모든 것이 국가 발전의 이름으로. 그리고 물론 서울의 통치 아래 조국의 통일을 위한 준비도 있다.

여기서 장군은 한국의 뿌리깊은 사회관계와 통치라는 고유의 전통이 유례없는 기술적 진보와 과학적인 성과와 공존하는 특별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신적인 혁명운동을 보았다.

피고에서 박을 죽인 살인자


해가 거듭될수록 박정희 정권은 점점 더 북쪽 정권을 더 닮아갔다. 단순히 공산주의 대신에 민족주의와 보수적 원칙을 조장했을 뿐인데, 이는 물론 북한의 마르크스주의 광기보다 낫다. 이제 한국에서 유신 시대는 전체주의로 간주되고 박정희 자신은 스탈린과 같은 존재로 간주된다. 그의 평가는 매우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충분한 지지자와 비평가가 있다. 유신의 생각이 계속해서 진화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그 계획이 나폴레옹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통일과 북한과의 전쟁, 자체적인 핵무기 확보, 그리고 창작을 위한 서구 음악, 의복 및 영화 금지. 정신적 소생 사회를 위한 한국 고유의 대중문화. 장군은 한국 땅에 떨어진 많은 시스템의 요소를 실제로 합성 할 수 있었고 비옥 한 싹을 냈다.

그러나, 거의 20년 동안 권력을 잡은 후 현실과의 접촉을 상실한 박은 너무 멀리 갔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보부장에게 가슴에 권총 탄을 맞았다. 개인적인 적개심 때문이든, 또는 음모론자들이 좋아하는 다른 이유 때문이든, 우리는 더 이상 알 수 없다.

Posted by 李蘭胡
博客論, discuss a blog2022. 5. 26. 12:15

2009년 11월 25일 수요일

일본의 저명한 작가 미시마 유키오가 일본 자위대를 장악하고 일본 천황을 실권에 복귀시키려는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후 의례적인 일본의 전통방식으로 자살한 것은 1970년 이 날이었습니다.

 
그는 1968년에 천황을 수호하기로 맹세한 전통적인 사고를 가진 젊은 일본 학생들로 구성된 일종의 민간 민병대인 다테노카이라는 조직을 만들었습니다. 

그가 실제로 그의 쿠데타 시도가 먹힐 것으로 기대했는지에 대해서는 매우 의심스럽니다만. 

많은 사람들은 이것이 단순히 유키오가 일본 전통 방식으로 자신의 원칙을 위해 죽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면에서 그는 시대에 벗어난 사람이었고 그의 견해가 현대 일본 시대에는 뒤떨어졌다는 것을 상당히 오랫동안 알고 있었습니다.

 

RobertNovember 26, 2009 at 9:48 AM

저는 이 쿠데타 시도가 당시 뉴스 보도를 기억할 만큼 나이가 들었지만 
군주제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미시마는 제 어린 시절에 가장 널리 읽힌 소설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물론 영어 번역)
저는 그 젊은이들이 아직도 그를 읽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느낀 인상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MadMonarchistNovember 26, 2009 at 3:29 PM

제 인상도 그렇습니다. 그의 보다 우익적인 사상은 그당시 자유주의 엘리트들이 사이에서 그의 명성을 훼손시키고 있었고, 제가 오늘 본 바로는 그에 대해 들어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매우 큰 팬이지만 널리 퍼지지는 않습니다.

AnonymousAugust 15, 2014 at 11:19 PM

선생님,

저는 미시마 유키오의 목표가 자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공하기 직전까지 갔던 심각한 반혁명적 음모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한 일부 정보가 공개되었고, 저는 모든 학회장들이 죽은 후에 더 많은 의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대의 위대한 영웅 중 한 명입니다.

 

https://madmonarchist.blogspot.com/2009/11/anniversary-of-attempted-monarchist.html

 

Anniversary of Attempted Monarchist Coup

It was on this day in 1970 that the noted Japanese author Yukio Mishima ceremoniously killed himself in traditional Japanese fashion after ...

madmonarchist.blogspot.com

 

Posted by 李蘭胡
博客論, discuss a blog2022. 1. 27. 13:16

간만에 블로그 소개좀 해보겠습니다. 이글은 작년부터 쓴다고 했는데 이렇게 됐습니다. 

1. 행복나라 친구들

http://dukeclown.egloos.com/

 

 

행복나라 친구들

As you can see, I'm a lot happier.

dukeclown.egloos.com

(구블로그)

http://otherhappy.egloos.com/

 

DIFFERENTLY SANE

I'm not mad at ALL. I'm just DIFFERENTLY SANE

otherhappy.egloos.com

(현블로그)

조커, 지금의 우파코인 병신티비의 애비뻘 되는 이글루스의 (자칭)극우 블로그입니다. 배트맨 시리즈의 조커 컨셉을 하여 스스로 광대라고 지칭하던데 조커 이미지라곤 그 옛날 팀 버튼 영화와 배트맨 TAS 이미지만 쓰고 히스 레저 조커는 쓴 적은 거의 없습니다. 뭐 본인 취향이 아니었나 봄(나는 호아킨 피닉스 조커가 가장 마음에 드니 그짤만 쓸것입니다)

자, 이 인간은 원래 '티안무'라는 닉네임을 썼습니다만, 후술할 과거 이력 때문에 지금은 안 씁니다. 사실 구블로그 하나 더 있는데 폭파해서 링크 안 넣은거임.

 

2. 조커의 과거 이력을 알아보자

(어떻게 군함을 여성형으로 부르는 배박이들은 하나같이 이 모양이냐..??)

조커는 디시 2차세계대전 갤러리 출신이고 처음엔 소시민이었다가 티안무로 바꿨습니다.(여기서 티안무는 건담 티안무에 따옴) 처음엔 멀쩡?했지만 어느 순간 일뽕이 되어서(아님 원래부터 그랬거나) 제로센과 일본 군함을 찬양하며 빠는 배박이다. 그나저나 독뽕감정기 시대 일빠를 하다니 용기는 대단하십니다.

 

조커를 2대갤에서 쫓아낸 사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충 시시컬컬한 밀딱들의 성능논쟁에 관한 병림픽으로 보입니다. 사실 나도 이 글은 자세히 안 봄.해당 글은 여기서 가져왔습니다.

하여튼 제로센 사건으로 우리의 쿨찐 조커는 역갤로 활동지를 옮겼는데, 이거 보고 산업사회와 그 미래 '찢'을 정도로 아주 쿨찐내 나는 청동기 농기구 글을 썼습니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atheism&no=31095 

 

티안무 사이버수사대 고소 내용문 작성 완료 - 무신론 갤러리

 1 신고 대상디시인사이드에서 "M.티안무"라는 아이디 사용자이글루스 kbjmkr 아이디 사용자네이버 kbjmkr 아이디 사용자한양대학교 신소재공학부 재학중 (4학년으로 추정됨)이상 동일인http:/

gall.dcinside.com

 

그리고 이 시점에서 조커는 무신론갤에 쳐들어와서 키배를 뜨는데(조커는 친기독교입니다.) 당시엔 생소한 패드립을 시전하여 무신론갤러측이 고소미를 시전합니다. 여기서 조커의 학력은 한양대학교 신소재공학부라는 걸 알 게되는데, 신소재공학부는 대학원가야 본전 따는데 대학원은 갔겠죠? 아마

3. 행복나라 친구들 게시판

이후 조커는 2008년쯤에 이글루스에 이주해서 닉네임을 티안무에서 Joker™로 변경하고 본격적인 수구꼴통 컨셉으로 활동하여 전성기 이글루스 수꼴로 이름을 날리게 됩니다.

블로그 게시판은 대충 이렇습니다.  '노무현 최후의 14일' 게시판이 인상적인데, 조커는 2008년부터 수꼴루스에 활동한 올드 보이'이기' 때문이죠.

게시판을 아주 간단하게 소개해봅니다

노무현 최후의 14일 : 제곧내

ETC : 그냥 일상글이나 잡다한 렉카질할때 적는 곳.

행복나라 동화 : 노무쿤을 까는거 동화식으로 쓰는 곳인데 노잼이니 넘어감.

생활 이야기 : 렉카글 없는 일상 게시판

접여가집 : 렉카글 2

노시즘 : 대충 MC무현과 휘하 친노 세력을 나치즘에 비유하면서 극딜하는 게시판인데 제대로 연재나 했는지 모름.

Adventure : 대충 보수주의자가 되었다며 빨간약 드링킹하는 내용. 읽기 귀찮으면 일베 짤방 보면 되요. 저렇게 빨간약 드링킹하는 건 Based and Redpilled라는 해외밈과 유사합니다. 매트릭스는 정말 『현대의 신화』아닐까 생각이 들정도로.

광대의 사전 : 페미니즘밖에 없음. 페미를 논할 때 "페미니즘은 여성을 자연적인 존엄성으로부터 해방시켜 열등한 남성이 되도록 만들었다"듯이 글은 저급하지만 제법 논조를 갖춘 글이라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리버럴 데모크라시 쾌락을 맛보고 Z세대의 팬덤 문화 + 그 세대 특유의 말초적인 인터넷 문화로 혼종 잡탕이 된 남성성 퇴락한 반페미 하나로 꺼드럭거리면 좋다고 빨아주며 기성세대에 기생하는 병신 이대남은 말 없죠.

도요타 다이쥬 : MC무현 = 나치라면 여기는 머중=덴노임.

어째 일뽕이 덴노보고 일개 샤머니즘 신관왕 정도로 취급하는데, 사실 조커는 일뽕보단 명예백인이 되고 싶은 서구 우월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조커의 인종 우열를 따지자면 대충 이렇습니다.

북미 및 서유렵 백인 > 일본인 > 중부유럽(독일 등) > 서구 열강의 시민으로 살고 있는 얌전한 유색인종 > 중국인 및 동구권 슬라브 > 조선인 > 기타 약흑분(유대인 제외)

나머지 게시판은 걍 생략하겠습니다. 어차피 위의 게시판과 컨셉이 겹치고 소개에는 쓰잘데기 없는 내용들임.

4. 글

이제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소개글을 보면 조커는 안 봐도 넷플릭스인 일뽕 병신 자유팔이 극우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진보 깨시민 586을 증오하는 아주 평범한 보리수요(#).

한 가지 특징이라고 하면(사실 아주 큰 특징은 아니지만) 지랄맞은 사회진화론자에, 스스로 기독교 신자라 혐이슬람이라고 합니다. 전통주의고, 반중이고 뭐고 티베트와 위구르는 중공의 지배를 받는 게 가장 낮다고 평한 게 아마 일반 보리수와 가장 차이나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글(링크친 글)는 조커의 성향이 가장 두드러지는 글 중 하나입니다. 약흑분은 그냥 좆나게 패서 뒈지며 노오예가 되는 게 나으며, 한 번은 개드립성이지만 패배자 따위는 지지할 생각도 없다고 하며, 파시즘에 반대하고 나치도 안 빤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양반은 뉴라이트의 성향과 완벽히 일치합니다. 애석하게도 뉴라이트(한국 기준으로)는 젊은이가 보기에는 20년 넘어가는 틀딱 사상이며, 딱히 위트있지도 않고(이게 중요, 선동 능력이 떨어짐) 현체제 붕괴를 가장 경계한다는 것.(신자유주의외엔 미래적 대안이 읎음)

때문에 민족주의를 좆나게 싫어합니다. 북한 사람은 같은 민족도 아니고 그냥 북부 미개토인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위 링크 에서 '서구라는 새로운 로마의 시민이 되는가'라는 대목을 보듯이 서구의 시민이라(쓰고 방구석 명예백인), 조선족도 싫고 북한 주민도 싫고 전라도도 싫은, 한반도의 세계관을 좁혀가는 행위도 이상하지 않은 짓입니만 서구가 낳은 PC, 개인주의, 페미니즘을 무럭무럭 잘 먹고 종족적 자살을 하는 건 뭐라 안 하죠.

그냥 싫어하는 것도 아니고 박정희도 저주합니다.(#) But, 경제 발전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박정희 시대의 민족 교육은 수많은 진보 NL을 낳았다고 비난하던데, 이 부분은 팩트라서 이상할 것도 없는 주장입니다.

따른 뉴라이트가 글렇듯이 조커도 이승만을 대한민국의 국부, 자유민주주의 수호자, 기독교입국론 등으로 지들 입맛에 맞게 왜곡 포장하는 양반입니다.

사실 한국 최초 집권여당의 창당선언문 초안을 보면 조커의 바람과는 반대로 노동자, 농민 중심으로 대중주의를 표방한 생각보다 다이나믹 로동한 정당이었습니다.

그리고 5.16 군부세력도 조커 같은 숭미주의자를 경계했습니다.(#, #)

그리고 누가 과거 2대갤 씹덕 아니랄까봐 가끔씩 글에 건담이나 아니메 짤방을 넣거나. 글에서 2차대전 은유가 가득합니다.(예를 들어 좌빨 병신짓을 보고 총통 각하가 옮았다며, 히틀러 어록 인용하는 거) 본인도 과거 티안무였다는 걸 부정하지 않은가 봅니다.

그 시절 뉴라이트 자유팔이 답게 미제스 센세 어록 인용도 나옵니다.(#) 이런 애들 나오지 말라고 미제스 연구소 한국지부가 출범했는데, 마제스 연구소에서 보면 자지를 박아버리지 못해 부랄을 찢어 버릴 듯.

얘완 인간의 파시즘 (1)

얘완 인간의 파시즘 (2)

다른 글에선 그 '피와 흙'을 언급하는 글도 있습니다. 정황상 동물 보호 논란에 쓴 글인 거 같은데, 피와 흙 이론은 그저 홀로코스트적인 시점에서 쓴 글이며, 유대인 가스실 웅엥웅 수준의 이해를 하고 있으니 철학적인 글은 기대하지 맙시다

아니 근데 씨발 지금보니 애완도 아니고 '얘완'이라고 썼네요. 내가 맞춤법은 안 따지는 편이지만 자칭 논객이 이런거 틀리는게 우습지만, 어차피 글 팔아먹을려고 쓰는 것도 아닌데 넘어가죠. 근하하하(사실 병신티비중 띄어쓰기, 맞춤법 틀린 인간들 넘침)

 

그리고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박근혜를 좋아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이때가 대략 유승민과 친박의 갈등이 시작된 시점인데 사실 이때부터 자신의 안식처와 같았던 대한민국 보수의 대분열이자 몰락의 시발점이었다는 건 조커 본인도 몰랐을 거입니다. 그리고 조커는 공화주의를 지지합니다.(#) 왕의 모가지를 따지 못한 나라에 태어나서 나오는 열등감일진 모르지만.

http://otherhappy.egloos.com/1153050

 

민주화의 큰 별이 다시 하늘로 돌아가다

▲ 그가 없었다면, 아무 것도 없었다andThe last man who is standing & laughing 신고

otherhappy.egloos.com

IMF로 경제 망친 대통령이라 비난했을 것 같은데 의외로 김영삼을 추모했습니다. 땡삼이는 인지도와 별개로 새벽 시간에 죽어서 당일날 이렇다할 특보도 없어서 그냥 무난하게 넘긴거 같습니다.(김대중과 노무현은 아침 오후 시간대에 죽음)

그리고 독실한 기독교인이지만 K-교회는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5. 원조렉카

언급하고 싶은 글은 많지만 여기서 끝내도록 하고, 아까부터 우파코인 사이버렉카 원조라고 평했는데 이유는 이 인간 글 쓰는 방식 때문입니다. 조커의 글쓰기 특징은 대체로 이렇습니다.

어떤 사안이 있으면 직접적인 의견은 절대 안 낸다 : 국보법 논쟁을 예를 들면 '난 국보법은 ~~이런 단점도 있지만 ~~이런 이유로 지지한다'글을 절대 안 씁니다. 대신 과몰입해서 자연발화하는 병신들 있으면(트위터나 그런 것들) 걔네들 저격글 쓰거나 대충 유명인사 어록을 인용하면서(이것도 거의 다 2차대전 관련 인물들이라 밀덕질 좀 해봤다면 안 봐도 히스토리 채널임) 비슷한 성향의 추종자와 좆목질하는 게 다입니다.

이게 건설적인 토론이 가능할 정도로 자기주장이 뚜렷하면 모르겠는데, 너는 이래서 틀렸네 어쩌네 저격글 쓰고 끝인 수준이에요. 딱 일베식 팩트체크식 수준의 글이며, 이걸 좀 더 발전시키면 딱 우파유튜버 & 사이버렉카 정도죠. 솔직히 윾튜브 얘한데 형님형님 해야 될겁니다.(현실이든 사이버든)

그리고 이 인간의 글에서 특유의 저급함이 묻어 나오는 게 특징입니다. 글 하나하나에 짤방은 수위가 높고 이슬람 관련 글에 염소 수간 드립은 꼭 나옵니다. 아무리 이글루스 4대 수꼴이라 해봐야 절대 주류로 올라갈 수 없는 이유.

6. 유년기의 끝

자 솔직히 추억의 블로그라서 이 글 보고 예토전생 좀 하라고 강도 높게 비난조로 써봤습니다.

2015년까지만 해도 '이글루스 조커'라고 검색만 해도 많이 나와서 악명이 자자했는데, 이제 이글루스란 플랫폼도 틀딱용이 되었고, 광대라며 장황하게 쓴 글도 주어만 좀 바꾸면 루리웹 회원이 쓴 거라 믿을 정도로 중2병으로 점철되어서, 세대교체된 현재(D모 사이트도 급식충이 많아서 5년 전 일도 기억 못 하는데) 조커의 글은 트렌드에 맞지 않습니다.

지금은 최소 30대 이상일 텐데 보수 대분열 시대에 아직도 그 성향 그대론지 묻고 싶습니다. 성향은 본인 자유지만 틀튜브 시청은 하지 말라고 하고 싶습니다.

 

Posted by 李蘭胡
博客論, discuss a blog2021. 12. 20. 13:55

쓰기 전에 나는 20대가 되기 전까지 정치에 관심없는 학생이었다. 나는 투표권이 생겼는데도 선거에서 그냥 부모가 찍으라는 후보를 찍고 집에 왔다. 그 선거가 20대 총선이었고 새누리당을 찍었다.

 

정치에 관심을 들인건(적어도 정당 정치로는) 2016년, 그것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였다.(사실 나무위키가 파라과이 법인이라 리그베다 위키와 달리 정치 문서 작성금지가 해제되어서 장작위키를 통해 얄음얄음 정치 지식을 습득하였다. 씹덕들의 인터넷 놀이터였던 엔하위키랑 달리 이미 생활 사이트가 된 나무위키라 까놓코 써봄.)

참고로 정사갤은 한번도 안 해봤다. 나는 인터넷 틀딱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게할배 멀티는 이용할 생각도 없었음. 구 주식갤 말고 구 정사갤 말하는 거다.

 

1. 기갑갤러리(2015~2017)

기갑갤러리가 왜 정치갤?이냐고 생각하겠지만, 정치와 전쟁의 연속성 같은 소리는 집어쳐도, 디씨 특성상 기갑 이야기만 하는 갤러리가 아니었고(육해공 통합 갤이다) 알바는 방치플레이를 하기 때문에 갑갤은 정떡도(정치떡밥) 그냥 나왔다. 특히 정떡은 씹덕, 19금, 일뽕 떡밥과 함께 갑갤 새벽반을 책임졌는데, 짤방 절망편이 요약해준다. 

이 갤러리는 밀리터리 갤러리 성향상 안보 중심의 우파 정도에 위치했는데 박근혜정부의 병신같은 무능력 때문에 국방을 제외하면 대부분 반정부적이었다. 소수의 찐좌빨들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있었는데, 이때 대원수라는 고정닉이 김종인을 킹종인이라고 칭송하였다. 검색돌리면 다 나온다. 

이 갤은 19대 대선에서 대깨문, 간빠, 윾승민으로 나눴다. 물론 이건 정떡종자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고 대체로 갤여론은 국방 전문가라는 점을 들어 유승민이었다.(유승민은 큰 정치인이 되기엔 한참 늦었고 더이상 지지하기 싫지만, 국방정책 만큼은 옹호하고 싶다.)

https://gall.dcinside.com/arm/1317626

 

자유한국당 이러는게 ㄹㅇ 망조임... - 기갑 갤러리

정당이 망하면 제일 먼저 망가지는게 안테나임국민 여론도 모르고 그걸 필터링할 애들도 다 떠나서저런 말도 안되는 반응을 보임. 그러면 남은 애들은 븅신 콘크리트만 남아서 개소리만 싸지름

gall.dcinside.com

혹시라도 이 글을 안 믿을 사람을 위해 예시 링크를 준다. 기갑갤은 대선이 지나면 정떡은 수그러들거라 예상했지만 더더욱 정치적인 갤러리가 되었다.

참고로 로자룩셈부르크 갤러리와 새로운보수당 갤러리, 나치 갤러리의 몇몇 고정닉들은 갑갤에 활동한 전적이 있다. 

 

2. 개혁보수신당 마이너 갤러리(2017, 2018~2020)

기갑갤 고정닉 살바도르가 만든 갤러리이다.(탈퇴한 갤러라 사실인지 불분명함) 갤주소가 왜 킹무성인지 궁금한데, 사실 이때 당시 김무성이 새누리당 탈당할 시점에 개혁보수의 희망으로 보여서 지었다고 갤주딱이 말했던걸로 암.

대 마이너 갤러리 시대에 처음으로 활동한 갤러리이다. 사실 여기는 아주 잠깐 활동하였고 그 이후엔 바른정당 마이너 갤러리가 만들어져서 유저층도 그쪽으로 이주 하였다. 이후 바른정당 갤러리가 자진 폭파하자(이유는 아래에 후술) 바갤러들이 대피소로 다시 정착하였다.

이 갤은 초기엔 토론 위주였다가 바갤 폭파 이후엔 더욱 유머적 성향이 짙어졌는데, 어둠의 박사모를 자처하여 레카 밈을 밀었다. 이 때부터 새보갤 전신이었다.

이 갤은 새보갤 설립 이후엔 유저층이 다 거기로 이주해서 방치된 정전 갤러리였는데, 언제부터인지 듣보잡 근첩이 갤러리 처먹고 갤러리의 모든 글이 지워졌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무리 갤러리 땅따먹기를 해도 서울 20대 19cm대물남에게 맡기는 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3. 바른정당 마이너 갤러리(2017~2018)

개보갤에 잠깐 활동한 후 이주한 갤. 나는 윾빠였기에 자주 이용하였다. 그러나 2018년 유승민 청탁 논란으로 갤러들은 멘탈이 터져 주딱은 자진 폭파를 선언하고 사라졌다. 이후 유저들은 개보갤과 군소 보수갤로 갔다. 

 

4. 보수빅텐트 마이너 갤러리(2017~?)

마갤 시대 이후 나온 군소 보수갤러리 중 하나. 이름 드대로 보수 통합을 위해 논의하는 갤러리였다. 미국 공화당식 빅텐트를 중시했다. 특이한 건 모 고닉이 전두환, 노무현과 함께 김영삼을 좆나 혐오하고 다녔다. IMF 때문에. 그 고닉은 나중에 친이연대 갤러리를 만들어서 놀고 있었는데 지금은 뭐하느 지 모름. 언제부터 유저층이 보수의 내일 갤러리로 가면서 정전갤이 되었고 위에 대좆남이 먹고 글 다 삭제됨.  

 

5. 보수의 내일 마이너 갤러리(2017~?)

보수의 미랭 대해 논의하는 갤러리였다. 자한당 지지, 바른정당 지지 둘다 있었다. 사실 보빅갤과 별 차이 없었는데 이쪽이 더 활발한 거 같았다. 역시나 대좆남이 먹음

 

6. 바른미래당 마이너 갤러리(2018)

바른정당 갤이 폭파한 후 바른미래당이 출범하자 여기사 새로 정착한 갤러리 같지만 얼마 안가 간빠들이 점령하였고 간빠 겸 산빠 갤기장이 되었다. 이것도 대좆맨이 먹음

 

7. 자유한국당 마이너 갤러리(2018~2019)

내가 윾빠 탈출하고 바른정당도 9석따리에 국민의당과 통합할 때 시기일 때 했다. 이 갤러리는 바갤러를 바시스트라 부르며 사이가 안 좋았고 지금의 새보갤 국힘갤 관계랑 비슷함. 이 갤은 빅좆맨이 안 처먹고 박물관으로 유지중임.

여담으로 윤미향 국개의원 되기 전에 알 사람은 알던 정의연 저격함.

8. 새로운보수당 마이너 갤러리(2020~2021)

개보갤 부터 이어지는 보수 갤러리의 마지막 계보이다. 손학규만 아니었다면 지금쯤 개보갤에서 놀고 있을거다. 이갤은 처음엔 개보갤에서 이름만 바꾼 수준이었지만 21대 총선 전후로 규모가 커지면서 디씨내 종합 정치 커뮤니티가 되었다. 아마도 중도우파를 자처해서 입갤하기 쉬운 듯. 하지만 펨코 같은 타사이트 나 야갤 같은 타갤에서 유입이 좆나 생겨서 그냥 이대남 잡탕 찌그러기가 되어서 더이상 안 한다. 그나마 통하는 게 있다면 반페미 정도인데 안티페미 운동이 얼마나 단일성이 없는 운동인지 유심히 보여주고 있다.

 

9. 나치 마이너 갤러리(2020~)

이 갤은 사실 17년에 처음 봤지만 그 때는 빌헬름이란 독뽕 컨샙 병신이 운영하던 갤이라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19년 후반기에 이범석과 관련된 역사 자료를 찾다 양질의 글을 보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2020년은 새보갤 하느라 나치갤은 그냥 기웃거리기만 했고, 아마 21대 총선에서 본격적으로 나치갤을 한 것 같다. 바른정당의 실패와 손학규의 몽니짓과 금권정치질, 분당 사태로 이미 대한민국의 정당 정치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는데, 우파 병신티비와 황모씨의 K-티파티 짓거리와 21대 총선 대패로 대한민국의 주류 보수 세력들은 근본(을 스스로 버려서)없는 모더니즘으로 뭉친 이익집단이라는 걸 알아서 완전히 탈보수함. 지금도 그렇고.

글은 잘 안 쓰는데 나치갤에서 신고식을 좆나 병신같이 되어서 아직도 글쓰기가 꺼려짐. 아직도 나치갤 밈 모르게 많다.

Posted by 李蘭胡
博客論, discuss a blog2021. 11. 5. 18:44

VictoryGinRB asks (I think): I was about of directing to You some particular questions…about philosophical groundings of monarchism by more modern thinkers…as J. Evola, Ortega y Gasset, Spengler, Toynbee and others connected with doxas of ant modernism and cultural pessimism (mainly anti-democratic, anti-secularism, historical regression etc) and was curious if You have interest in directing some attention to those questions in future and how well You are into that sphere…
You would probably be disappointed. That transcendental stuff, what I have studied on, I mostly keep to myself. I’ve read quite a bit of Evola but even he was more of a theoretical than actual monarchist, not as familiar with the others besides Spengler and, again, nothing very “monarchist” jumped out at me about him. I probably wouldn’t cover much of that sort of thing here because, from those I have read up on, their “monarchism” was all very theoretical, far off in the future, sometimes even other-worldly and I think it more practical to not lose focus on the here and now before all traces of monarchy are gone.

VictoryGinRB asks (I think) : 나는 율리우스 에볼라, 오르테가 이 가세트, 슈펭글러, 아널드 토인비와 같은 반근대주의 사상과 문화비관주의(주로 반민주주의, 반세속주의, 역사적 퇴행 등)와 미래의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지, 그리고 이 분야에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매드 모나키스트 : 아마 실망할겁니다. 그 초월적인 것들, 제가 공부해 온 것은 대부분 나 혼자만 알고 있습니다. 저는 에볼라를 꽤 많이 읽었습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실제 군주주의자라기 보다는 이론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스펭글러 외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그에 대해서는 어떤 "군주주의자"도 나를 뛰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제가 읽어본 사람들로부터, 그들의 "군주주의"는 모두 이론적인 것이었고, 먼미래에, 심지어 다른 세계관에서도 그러했기 때문에 저는 여기서 그런 것을 많이 다루지는 않을 것입니다. 군주제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현재에 초점을 잃지 않는 것이 더 실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군주제가 없는 진정한 권리는 결국 그것의 자연적인 무게중심과 결정화를 빼앗긴다고 합리적으로 단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전통적인 국가에서 순수 정치 권위의 독립적이고 안정된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주요 기준점은 왕관이었기 때문이다."

-율리우스 에볼라

 

에볼라를 언급한 글이 있어서 퍼옴

Posted by 李蘭胡
博客論, discuss a blog2020. 11. 26. 18:20

madmonarchist.blogspot.com/?=1

 

The Mad Monarchist

"They cannot understand as yet that we are not fighting a political party but a sect of murderers of all contemporary spiritual culture."

madmonarchist.blogspot.com

 

매드 모나키스트(The Mad Monarchist)는 전 세계 군주주의자들에게서 상당한 지지를 얻는 극우 블로그이다.

2018년 3월 28일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블로그를 접었지만, 블로그의 시작일은 2009년 4월 10일로 상당히 오래된 블로그다. 

동명의 유튜브도 있는데, 2015년 이후 갱신이 없다. 그리고 트위터도 하는데 좌파와 우파 트위터리안에게 비난받다가 접은 걸로 안다.  참고로 이 블로거, 미국인이다. 인터뷰를 보면 텍사스에 태어난 걸로 추정된다.

성향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사이버망령으로 부활한 운게른 슈테른베르크라 할 수 있다.

프사도 운게른이고 실제로 운게른 컨샙 잡기도 했다.

그리고 블로그의 키워드는 단 3가지로 말할 수 있다. 기독교, 군주제, 반공.

www.amerika.org/politics/interview-with-the-mad-monarchist/

 

Interview With The Mad Monarchist

Interview With The Mad Monarchist by Brett Stevens on July 24, 2017 As our regular readers know, Amerika represents roots conservatism, which is the habit of preserving what works and then gradually improving it qualitatively that has guided humanity since

www.amerika.org

성향을 보면 기독교를 서구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긴다. 특히 카테고리에는 아예 기독교 군주제라는 게시판도 있을 정도. 이는 타 문명권의 왕조를 다루는 글에서 볼 수 있는데, 일본을 제외하면 기독교 왕조 보다 한 수 아래로 친다.

또, 그가 군주제를 지지하는 이유에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체제이며 가장 현실주의적이며 안정된 체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상당한 사회진화론적이며, 당연히 제국주의를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성향은 매드 모나키스트의 인터뷰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진성 수구꼴통이라서 미국인이지만 개신교, 가톨릭 보다 러시아 정교회를 더 선호 하는 거 같다.

이 짤방들도 매드 모나키스트가 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식민제국

매드 모나키스트 연재했던 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리즈인 식민제국 시리즈. 식민지 근대화론과 함께 식민제국이 이룬 업적과 악행과 잘못된 오해를 변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식민제국들은 대영제국, 스페인 제국, 프랑스 제국, 네덜란드 제국, 독일 제국, 덴마크 제국, 포르투갈 제국, 스웨덴 제국, 일본 제국, 벨기에 제국, 이탈리아 제국순이다.

gall.dcinside.com/board/view/?id=arm&no=1419247

 

독일 식민제국을 위한 변호 - 기갑 갤러리

  독일의 식민지 개척 활동의 뿌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거슬러갑니다.프로이센은 가나, 모리타니, 베냉과 카브리해에 작은 발판을 얻었지만 아주 오래 지속되

gall.dcinside.com

근현대사 갤러리에 전부 번역되었지만 접근금지돼서 현재 볼 수 있는 글은 독일 제국뿐이다. 특히 일본, 벨기에편이 아주 걸작이니까 번역기로 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 인간. 일뽕이다.

Korea를 검색하면 한국에 관한 글 찾아볼 수 있으나 일본 우익 사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글이 가관인데, 조선이 없었다면 일본이 실크로드까지 진출했을 거라는 늬앙스로 적거나, 이순신을 과장되거나 조작된 인물이라고 넬슨, 도고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도고 헤이하치로를 세계의 명장 제독으로 취급하는 것도 그가 일뽕이라는 증거이다)

그렇다고 혐한이라고 보기 어려운 게 선조를 옹호하면서 한국 대중을 상대로 국개론을 시전하는 글을 보면, 그냥 대깨왕이다.

madmonarchist.blogspot.com/2016/09/fascism-fascism-and-monarchy.html?=1

 

Fascism, fascism and Monarchy

The term “fascist” has been so-overused in modern political discourse that it has become something of a joke, an epithet that is hurled at...

madmonarchist.blogspot.com

madmonarchist.blogspot.com/2017/08/the-fascist-debate-and-christianity.html

 

The Fascist Debate and Christianity

It has become painfully obvious to all by now that our political discourse in the United States has degenerated into an argument over who ...

madmonarchist.blogspot.com

(미국 정계의 '파시스트' 몰이와 파시즘의 왜곡에 관한 글)

엄청난 수구꼴통이라 파시즘에도 호의적인데 히틀러 보다 무솔리니쪽이 더 선호하는 걸로 안다.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미국을 은근 아니꼽게 바라보는데, 왕조 국가들을 박살 내거나 공산주의 정권 수립에 기여한 점 때문에 그렇다.

 

 

 

Posted by 李蘭胡
博客論, discuss a blog2020. 7. 22. 23:36

작년에 있던 원브라이트님의 글입니다.

 4.15 총선 이후 블로그를 닫았는데 그동안의 글들을 못보는게 아쉽습니다.

Posted by 李蘭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