講讀, read2021. 10. 1. 20:21

※ 인용한 서술들은 캡처를 할 수 없어서 전부 수기로 적은 걸 옮긴 것이니 실제 서술과 차이가 있다.


 32사단 신교대 훈련소에서 읽은 책. 왜 군대에 정치학 서적이 있는지는 굳건이에게 물어보길 바란다. 이 책은 쓴 연도는 2016년. 그러니까 도널드 트럼프 경선과 브렉시트 때 쓴 책이다. 2019년 10월에 번역되었다. 인터넷 기사처럼 쉽고 빠르게 잘 읽히는 편이다.

 제목 그대로 포퓰리즘을 설명하는 포퓰리즘의 입문서이다.(저자는 포퓰리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이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었고, 포퓰리즘의 간략한 정리, 포퓰리즘의 역사, 그리고 서유럽 포퓰리즘 정당의 사례, 영국 브렉시트, 미국 대선, 전 세계적 상황 정리가 있는데 대부분의 분량은 서유럽 포퓰리즘 정당 이야기밖에 없다.


저자는 특이하게 포퓰리즘에 관해 두 가지 정리를 하였는데 다음과 같다.

(포퓰리즘에 대해서) 첫 번째 정의는 고정적인 지지기반을 넘어, 폭넓게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정치 스타일을 포퓰리즘으로 취급한다. 예를 들면 포퓰리즘을 정치 지도자에 의한 정당이나 의회를 우회하며, 유권자에게 직접 호소하는 정치 수법...(중략) 또한 국민에게 호소하는 수사를 구사하여 변혁을 추구하는 카리스마적인 정치 형태, 그리고 포퓰리즘 정치가란 지금까지의 정치형태에 변화를 시도하고 신선한 정치 수법을 사용하여, 국민에게 폭넓게 주장하는 것에 성공한 지도자들을 지칭한다. 예를 들어 일본의 나카소네, 영국의 대처, 프랑스의 사르코지,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가 있다.
P34
두 번째 정의는 '국민'의 입장에서 기성정치나 엘리트를 비판하는 정치 운동을 포퓰리즘이라고 한다. 즉 포퓰리즘이란 정치변혁을 목표로 하는 세력이 기성 정치권력 구조나 엘리트층을 비판하고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여 그 주장의 실현을 목표롤 하는 정치 운동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엘리트나 '특권층'과 '국민'의 양자 대립을 가정한다. 그리고 변혁을 목표로 하는 세력이 '국민'을 '선'이라고 하는 한편, 엘리트는 국민을 무시하는 존재하는 '악으로 묘사하고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의 국민전선, 오스트리아의 자유당이 있다. 이점에서 프랑스 사상가 츠베탕 토도로프(Tzvertan Todorov)의 지적은 매우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포퓰리즘이란 전통적인 우파나 좌파로 분류 가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래'에 속한 운동이다. 기성정당을 우도 좌도 통틀어 '높은' 존재이다.
P35

저자는 두 번째 정의를 의견을 두고 있다.

그리고 포퓰리즘 정당이 개혁의 희망일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포퓰리즘 정당이 직접 개혁을 하는 게 아니라 기성 정당에서 포퓰리즘 운동을 억제하기 위해 그들의 정책을 일부 수용하는 거다.

예전에 포퓰리즘은 소수파 지배를 무너뜨리는, 실제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해방운동으로 출연하였다.
P32

이는 포퓰리즘의 어원이 된 미국의 인민당(책에서는 국민당으로 번역됨.)에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포퓰리즘은 일종의 노동운동으로 출발했는데, 미국의 인민당은 19세기 말에 창당된 정당으로 부패한 기성정당으로부터 양당제를 깨트리겠다고 출발하였는데, 그 결과는 1892년 선거에서 하원의원 10명, 주지사 3명, 대선에서는 8.2% 정도의 득표율을 받았다. 하지만 기성정당은 위기감을 느끼고 인민당의 정책을 일부 수용하면서 지지율이 떨어지고, 결국 인민당은 1908년에 사라진다. 또 다른 예로 빈부격차가 심각한 남미의 이야기가 있는데 페론주의는 유명하니 생략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럽의 포퓰리즘은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것인데, 유럽 포퓰리즘의 시작은 90년대 이후 시작된다는 점. 이전까지 유럽은 포퓰리즘을 미대륙의 후진적인 정치 문화 정도 취급했다는 것. 그리고 90년대 이전 유럽의 정치는 냉전 질서에 따라 한국과 비슷한 양당제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현대의 포퓰리즘 또한 '해방과 억압'이라는 두 얼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P33

현대의 유럽 포퓰리즘 정당 또한 해방운동 요소가 있는데, 해방은 냉전 종식 이후 좌우 대립이 종결되면서 정책적으로 별 차이 없게 되자 기성정치와 엘리트주의로부터의 해방이고, 억압은 반이민과 반이슬람을 말하는 것이다.

"일본인에게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국민에게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정치에 좋지 않으며, 정치가 좋지 않으면 일본도 좋지 않다."이 발언을 한 사람은 당시 오사카 시장 하시모토 도루였다. 이 발언에 이어 그는 "주민이 실제로 주민투표를 경험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P31

특히 현대 포퓰리즘의 특징은 이들은 겉으로 나마 '민주주의'를 수용하는 것이다. 내각제 국가라면 더더욱 직접선거, 국민투표를 주요 정책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것을 리버럴 포퓰리즘이라고 하는데, 극우로 분류되는 프랑스 국민연합이나 독일 AfD도 반이민, 반이슬람 주장도 단순히 인종차별이 아니라 '이슬람교는 인권탄압, 여성차별, 샤리아법 등으로 서구 민주주의 문화를 위협하기 때문에 반대한다'이다.

그리고 포퓰리즘 정당의 당내 쇄신과 변혁 과정을 보면 천재적이라 볼 수 있는데, 프랑스 국민전선, 벨기에 VB 같이 역사가 좀 있는 정당들은 초기 이념들은 반민주주의, 반유대주의, 네오파시즘 등 까놓고 말해 나치향우회 수준밖에 안 되는 군소 정당이었다. 하지만 마린 르펜 등의 후기 당 대표들은 당내 극우적 인사들을 출당시키거나 비주류 만드는 등 인적 청산을 하거나 젊은 인재 영입, 기성정당 비판에 대한 수준 높은 언변 능력, SNS, 매스미디어의 적극적 활용, 카리스마적 지도자 등으로 지지율을 높이고 이미지 세탁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유럽의회가 이러한 포퓰리즘 정당의 선전장으로 전략한 것도 언급되고, 직접민주주의가 이루어진 스위스 조차도 포퓰리즘 정당이 나와서 고정 지지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언급된다.(책 표지도 스위스 인민당이 낸 포스터이다.) 

포퓰리즘은 교통수단, 의사소통 수단의 발달을 본격적으로 활용한 최초의 정치운동이었다.
P69

특이했던게 네덜란드와 서유럽 소국들에서 버추얼 정당(버튜버가 아니다.)이라는 1인 정당이 성행한다는 것인데, 현대 정당 시스템은 엘리트주의적인,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는 과두정이라고 비판하면서 당원이 당 대표 포함 1명밖에 없으며, 오직 유튜브를 통한 선전을 통해 지지자를 모은다. 그리고 버추얼 정당에서 당선시킨 인물들도 일종의 지지모임 소속이라 엄밀히 말하면 무소속이다. 그리고 같은 포퓰리스트 사이에서 당 독재를 막기 위해 당원 가입을 요구하지만 말빨에서 털리고 지금도 1인 정당임. 놀라운 건 이런 정당이 네덜란드 여론조사에서 2위 먹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성정당이 포퓰리즘을 운동을 억제하기 위한 방법도 다양한데, 기성정당이 언론을 총동원하여 패싱 하는 방법이(인터뷰나 토론 방송에서 출연을 못 하게 하는 것) 있는 데, 효과는 확실한데 이 경우 포퓰리즘 정당의 피해자 코스프레 명분을 제공하거나 유권자들의 분노를 제공하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다른 경우로 기성 정당이 포퓰리즘 정당의 정책 일부 수용한다거나, 아예 연정을 통해 연립정권을 만들어서 포퓰리즘 운동을 억제하는 방법이 있다. 총 4가지인데 마지막은 기억이 안 난다.

 

2020년에 쓴 도서 후기인데, 덧붙이자면 이 책은 소수정당이 거대기성정당으로 부터 살아남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나는 소수정당이나 청년정치 운동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편인데, 만약 이 책의 과정들을 그대로 적용한다 치더라고 한국에서 이러한 포퓰리즘 운동은 대가리가 깨졌다 깨어나도 불가능이라 판단한다. 우선 한국의 정당법은 정당 등록을 위해서는 수도에 중앙당 사무실을 열고, 광역자치단체에 5개의 시도당 사무실을 열고 여기서 1000명 이상의 당원을 모집하고 200명의 정당 발기인을 모아서 발기인대회를 열어야 창당된다. 당연히 이러한 정당법은 결국 창당하는 건 정치자금, 지역, 인맥 등을 갖고 정치인이나 지역 유지 등이 창당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의 정치자금법은 빡빡한 편이다.(통칭 오세훈법이라는 그 법) 출판기념회를 열어 책팔이 하는 것도 몇 안되는 로비 수단이기 때문이며, 불법 정치자금 받다 아파트에 투신한 진보 의원도 있는데, 아무런 기반도 없이는 코인질을 해서 모을 수 있는 것도 아닌게 정치자금이다. 당장 트위터 계정만 설정딸치고 남은채 창준위에서 대가리 깨진 청년정당들이 차고 넘친다.

여기서 한국의 대안우파나 좌파들은 99%는 인식하지 못할 사실인데, 이런 포퓰리즘 정당들은 지역 기반을 갖고있는 엄연한 지역정당이라는 사실이다.  가령 일본 유신회는 간사이 지방의 지역정당이고, 벨기에 VB는 플런데런 지역정당이고, 독일 AfD도 구 동독 지역에 기반을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 위주의 활동과 지방 천대 현상은 정당인 입장에선 정치적 자살행위다. 그럼 수도권 지역 정당을 노리면 되는 거 아니냐 싶은데, 수도권은 원주민이 소수고 유목민이 다수인 유목 도시이고 이미 기성정당의 잔당인 바른정당과 그 후신인 바른미래당이 이걸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요약

1. 정당법과 정치자금법 바꿔야한다. 이거 못 하면 포퓰리즘 운동은 걍 대가리 깨지고 끝남(1)

2. 지역기반을 잡고 확실히 우리가 남이가를 시전하라. 이거 못 하면 포퓰리즘 운동은 걍 대가리 깨지고 끝남(2)

Posted by 李蘭胡
歷史, history2021. 6. 20. 01:15

스페인 내전 당시 팔랑헤당원들은 민병대를 조직하여 제2공화국 정부에 대항했는데, 여기서 타 스페인 반란군과 다르게 독자적인 계급 체계를 사용했음. 슈츠슈타펠처럼 ~~지도자인게 특징.

팔랑헤 민병대의 계급장은 왼쪽 가슴 주머니에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 멍에와 화살이 그려진 패치를 달고 그 밑에 계급장을 다는 게 일반적이다.(왜 일반적이냐면 오스프리나 다른 사진에서 위치가 다 제각각이기 때문.)

계급장 이미지를 그대로 번역했다.

  • 국가 지도자(Jefe Nacional) : 은색 별 3개. 이 계급은 프란시스코 프랑코밖에 없다.
  • 민병대 직할 지도자(Jefe Directo de Milicias)
  • 민병대 사단 지도자(Jefe Divisionario de la Milicias)
  • 정치위원회 위원(Miembro de la Junta Politica)
  • 국가 고문(Consejero nacional)
  • 보통 감독관(Inspector general)
  • 보통 비서관(Secretario general)
  • 테르시오 지도자(Jefe de Tercio)
  • 테르시오 부지도자(Subjefe de Tercio)
  • 민병대 직할 부지도자(Subjefe directo de la milicia)
  • 민병대 사단 부지도자(Subjefe divisionario de la milicia)

  • 국가 봉사 지도자(Jefe nacional de servicio)
  • 국가 봉사 부지도자(Secretario nacional de servicio)
  • 지방 지도자(Jefe provincial)
  • 지방 부지도자(Secretario provincial)
  • 현지 지도자(Jefe local)
  • 지방 민병대 지도자(Jefe provincial de milicia)
  • 테르시오 지도자(Jefe de tercio)
  • 반데라 지도자(Jefe de bandera)
  • 지방 민병대 부지도자(Subjefe provincial de milicia)
  • 테르시오 부지도자(Subjefe de tercio)

  • 반데라 부지도자(Subjefe de bandera)
  • 지방 봉사 지도자(Jefe provincial de servicio)  
  • 지방 봉사 부지도자Secretario provincial de servicio
  • 현지 봉사 지도자Jefe local de servicio
  • 켄투리아 지도자(Jefe de centuria)
  • 팔랑헤 지도자(Jefe de falange)
  • 분대 지도자(Jefe de escuadra)
  • 켄투리아 부지도자(Subjetfe de centuria)
  • 팔랑헤 지도자(Subjefe de falange)
  • 분대 부지도자Subjefe de escuadra)

  • Jefe Nacional
  • Secretario Nacional
  • Junta Política
  • Consejero Nacional
  • Jefe Directo de Milicias
  • Jefe Nacional de Servicio
  • Subjefe Directo de Milicias
  • Inspector General
  • Jefe Divisionario de Milicias
  • Secretario General de Servicio
  • Subjefe Divisionario de Milicias

  • Jefe Provincial
  • Jefe Provincial de Milicias
  • Jefe Provincial de Servicio
  • Subjefe Provincial de Milicias
  • Secretario Provincial
  • Jefe de Tercio
  • Secretario Provincial de Servicio
  • Subjefe de Tercio

  • Jefe Lo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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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efe Local de Servicio
  • Subjefe de Bandera
  • Jefe de Centuria
  • Subjefe de Centuria
  • Jefe de Falange
  • Subjefe de Falange
  • Jefe de Escuadra
  • Subjefe de Escuadra

 

2번째 짤은 계급이 중복되니 번역은 안 한다. 특이하다 싶은 점은 정치위원이나 국가고문 같은 문민 계급이 군인 계급보다 더 위에 있는데, 이는 파시즘은 군국주의일지 언정 군부독재 체제를 배제하고 2세계 사회주의 국가처럼 문민 우위의 통치를 지양했다는 대목이다.

 

이상으로,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고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군 계급을 몰라서 번역기로 돌린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참고용으로 올린다.

 

 

Posted by 李蘭胡

Михайловская 군사학교 포병 생도

Тверское 기병학교와 Николаевское 기병학교

 

 

소비에트 러시아는 제정 러시아군의 계급, 견장, 제복을 부정하고 뜯어 고쳤지만 의외로 생도복은 그대로 유지시켰다.

샤코를 쓴 게 포병생도.

Posted by 李蘭胡

상단 행

- 바실리 이바노비치 차파예프의 이름을 딴 25 보병사단의 군복.

- 니콜라예프 연대의 사단

- 제1니콜라예프 사단
- 사마라 사단
- 25사단,
- 25 폴타바 보병 사단

차파예프가 입었던 군복들.

 

가운데 행

- 1. 가리발디 기병 연대, 차파예프 호위대.

(이 연대는 이탈리아 국민 영웅의 공로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가리발디"라고 불렸다. 이러한 방식으로 소련 국가는 러시아와 외국 출신 모두 군주제에 대항하고 민족해방을 위해 많은 유명한 전사들을 기렸다. 이 연대에는 외국인이 없었다. 그러나 25사단에는 대부분 중국인으로 구성된 222 국제연대가 있었다.)

2. 1918년 소비에트 니콜라예프 제1연대 (군복과 민간복의 혼합)

3. 1918년 소비에트 니콜라예프 제2연대 (군복과 민간복의 혼합)

4. 1918년 소비에트 니콜라예프 제3연대(군복과 민간복의 혼합)

5. 1918년 소비에트 니콜라예프 제4연대(군복과 민간복의 혼합)

하단 행

1. 1919년 221 시즈란 "붉은 별 노동자 의용 연대

2. 1919년 220 이바노-보즈네센스키 "붉은 직공" 소총 연대

3. 1920년 224 크라스노쿠트 소총 연대

 

제25 소총 사단은 러시아 내전 당시 적군 부대중 맹활약하고 가장 유명한 부대이었다. 이 부대의 가장 유명한 인물은 프로파간다 영화로 유명한 차파예프이다.

사실 적군은 백군과 달리 통일된 체계를 갖추고 있어서 이 짤이 적군 군복 전반이 이렇게 생겼다라고 보면 편하다.

출처 : siberia-miniatures.ru/article_info.php?articles_id=2

Posted by 李蘭胡
博客論, discuss a blog2020. 11. 26. 18:20

madmonarchist.blogspot.com/?=1

 

The Mad Monarchist

"They cannot understand as yet that we are not fighting a political party but a sect of murderers of all contemporary spiritual culture."

madmonarchist.blogspot.com

 

매드 모나키스트(The Mad Monarchist)는 전 세계 군주주의자들에게서 상당한 지지를 얻는 극우 블로그이다.

2018년 3월 28일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블로그를 접었지만, 블로그의 시작일은 2009년 4월 10일로 상당히 오래된 블로그다. 

동명의 유튜브도 있는데, 2015년 이후 갱신이 없다. 그리고 트위터도 하는데 좌파와 우파 트위터리안에게 비난받다가 접은 걸로 안다.  참고로 이 블로거, 미국인이다. 인터뷰를 보면 텍사스에 태어난 걸로 추정된다.

성향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사이버망령으로 부활한 운게른 슈테른베르크라 할 수 있다.

프사도 운게른이고 실제로 운게른 컨샙 잡기도 했다.

그리고 블로그의 키워드는 단 3가지로 말할 수 있다. 기독교, 군주제, 반공.

www.amerika.org/politics/interview-with-the-mad-monarchist/

 

Interview With The Mad Monarchist

Interview With The Mad Monarchist by Brett Stevens on July 24, 2017 As our regular readers know, Amerika represents roots conservatism, which is the habit of preserving what works and then gradually improving it qualitatively that has guided humanity since

www.amerika.org

성향을 보면 기독교를 서구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긴다. 특히 카테고리에는 아예 기독교 군주제라는 게시판도 있을 정도. 이는 타 문명권의 왕조를 다루는 글에서 볼 수 있는데, 일본을 제외하면 기독교 왕조 보다 한 수 아래로 친다.

또, 그가 군주제를 지지하는 이유에는 인류사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체제이며 가장 현실주의적이며 안정된 체제라고 믿기 때문이다.​ 상당한 사회진화론적이며, 당연히 제국주의를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성향은 매드 모나키스트의 인터뷰를 보면 자세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진성 수구꼴통이라서 미국인이지만 개신교, 가톨릭 보다 러시아 정교회를 더 선호 하는 거 같다.

이 짤방들도 매드 모나키스트가 제작한 걸로 알고 있다.

 

식민제국

매드 모나키스트 연재했던 글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시리즈인 식민제국 시리즈. 식민지 근대화론과 함께 식민제국이 이룬 업적과 악행과 잘못된 오해를 변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소개하는 식민제국들은 대영제국, 스페인 제국, 프랑스 제국, 네덜란드 제국, 독일 제국, 덴마크 제국, 포르투갈 제국, 스웨덴 제국, 일본 제국, 벨기에 제국, 이탈리아 제국순이다.

gall.dcinside.com/board/view/?id=arm&no=1419247

 

독일 식민제국을 위한 변호 - 기갑 갤러리

  독일의 식민지 개척 활동의 뿌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멀리 거슬러갑니다.프로이센은 가나, 모리타니, 베냉과 카브리해에 작은 발판을 얻었지만 아주 오래 지속되

gall.dcinside.com

근현대사 갤러리에 전부 번역되었지만 접근금지돼서 현재 볼 수 있는 글은 독일 제국뿐이다. 특히 일본, 벨기에편이 아주 걸작이니까 번역기로 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 인간. 일뽕이다.

Korea를 검색하면 한국에 관한 글 찾아볼 수 있으나 일본 우익 사관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 때문에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임진왜란 글이 가관인데, 조선이 없었다면 일본이 실크로드까지 진출했을 거라는 늬앙스로 적거나, 이순신을 과장되거나 조작된 인물이라고 넬슨, 도고보다 낮게 평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도고 헤이하치로를 세계의 명장 제독으로 취급하는 것도 그가 일뽕이라는 증거이다)

그렇다고 혐한이라고 보기 어려운 게 선조를 옹호하면서 한국 대중을 상대로 국개론을 시전하는 글을 보면, 그냥 대깨왕이다.

madmonarchist.blogspot.com/2016/09/fascism-fascism-and-monarchy.html?=1

 

Fascism, fascism and Monarchy

The term “fascist” has been so-overused in modern political discourse that it has become something of a joke, an epithet that is hurled at...

madmonarchist.blogspot.com

madmonarchist.blogspot.com/2017/08/the-fascist-debate-and-christianity.html

 

The Fascist Debate and Christianity

It has become painfully obvious to all by now that our political discourse in the United States has degenerated into an argument over who ...

madmonarchist.blogspot.com

(미국 정계의 '파시스트' 몰이와 파시즘의 왜곡에 관한 글)

엄청난 수구꼴통이라 파시즘에도 호의적인데 히틀러 보다 무솔리니쪽이 더 선호하는 걸로 안다.

성향이 성향이다 보니 미국을 은근 아니꼽게 바라보는데, 왕조 국가들을 박살 내거나 공산주의 정권 수립에 기여한 점 때문에 그렇다.

 

 

 

Posted by 李蘭胡

10월 혁명 이후 독립한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의 군대입니다. 볼셰비키, 폴란드, 리투아니아의 방해에도 불고하고 벨라루스 민족주의자들은 빌뉴스에서 벨라루스 군사위원회를 창설하여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군이 결성되었고, 군대의 주축은 해체된 러시아군 부대와 벨라루스 의용군이었습니다. 때문에 벨라루스인 이의에도 독일인, 발트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등 구성이 다양하여 각 민족별로 대표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군대의 절정기였을 때는 약 2만 5천여명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벨라루스는 이미 볼셰비키들이 점령 중이었고, 소비에트-폴란드 전쟁 때 폴란드군을 도와 벨라루스로 진격했지만 벨라루스군보다 병력 수가 더 많던 소비에트군의 반격으로 다시 폴란드로 후퇴하게 되고 벨라루스판 국내 진공 작전은 실패하고 맙니다. 이후 리가 조약을 체결한 폴란드 2공화국은 이용가치가 없어지자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군을 무장해체 시키고 벨라수스 인민 공화국군 이렇게 사라지고 맙니다.

이 시기 벨라루스군의 특징은 해산된 러시아군 부대를 '탈러시아화'와 '벨라루스'화 시킨 거 라고 봐야하는데, 고질적인 군복 부족 문제 때문에 장교급을 제외하면 대부분 러시아군 군장을 개조한 수준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군의 군복의 특징은 독일식 군복을 착용했고, 독일군 회녹색 보다 좀 더 회색에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모와, 소매, 칼라, 견장에 벨라루스 국기를 형상화한 붉은 색-하얀색 띠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мацейювки라는 직사각형 군모를 썼다고 하는데 이것이 샤코 형태인지, 일반 군모인지는 불명입니다.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군의 군기

 

1. 벨라루스 군대의 식별 표시로 적백 띠를 단 벨라루스 후사르 소대의 기병 장교. Grodno, 1919년 봄
2. 벨라루스 군대의 식별 표식으로 하얀 띠를 단  벨라루스 제1 후사르 소대의 기병 장교. Grodno, 1919년 봄

1은 리투아니아 군대.

2. 1919-1920년 리투아니아 군대의 벨라루스 군단장, 1919-1920년.

3. 리투아니아 군대의 벨라루스 기병 대위, 1919년.

1. 벨라루스 인민 공화국의 군사 외교 사절단. 1919

2. 리투아니아 군대의 벨로루시 부대 장교. 1919.

Posted by 李蘭胡

 

부하라 칸국은 우즈벡 지역에 있던 마지막 칸국이었습니다. 부하라 칸국은 중앙아시아에 있던 3개의 칸국이었지만 러시아 제국의 소장 미하일 체르냐예프(Михаил Григорьевич Черняев, Mikhail Chernyayev)의 침공으로 부하라의 왕가는 러시아 제국의 귀족으로 편입되고 러시아 제국의 보호국으로 전략하고 맙니다. 하지만 보호국인 만큼 명복상의 주권은 보장되었으며, 군대 또한 유지되었습니다. 여기서 소개하는 부하라의 군대는 1860년 부터 1920년 볼셰비키의 부하라 침공으로 멸망하기 까지의 부하라 에미리트의 군대를 다룹니다.

 

바실리 베레시차긴의 기록화 After Failure, 1868, After Good Luck, 1868

그레이트 게임 이전의 부하라의 군대는 부하라를 포함한 중앙아시아 3개 칸국들은 19세기까지만 해도 미지의 세계였기 때문에 이들의 군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연구되지 않고 기록을 찾기 때문에 당시 탐험가들의 기록과 삽화 등으로 간접적으로 아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본문은 1920년까지의 부하라 에미리트의 정규군을 중점적으로 쓰겠습니다.

1920년까지 에미리트군의 군대는 당시 정규군과 민병대로 구성된 전형적인 중앙아시아 봉건 국가의 군대였습니다. 기록의 따라 다르지만 정규군에서는 8,000명 이상의 보병과 7.500명의 기병대가 있었고, 16개에서 40개까지 포중에 10개는 산포, 대다수는 구식 화포였습니다. 지역 영주들이 이끌고 집결하는 민병대에는 최대 27,000명의 병력과 기병, 보병이 있었습니다. 상당수의 민병대는 낡은 화기로 무장하여 부싯돌과 성냥개비를 모두 사용하거나, 엽총이나 칼 만을 휴대하고 있었지만, 민병대 중에는 현대적인 볼트액션 소총 무장한 병력이 있었다고 합니다.

일반 부하라의 군복은 러시아 군복에서 가져왔습니다. 다만 장식은 제각각이었고, 부츠는 부하라 시민들이 사용하는 것과 같은 종류였습니다. 상급 장교들의 제복은 각각 다르게 장식되어 있었는데, 장교들은 각자 견장색을 다르게 했습니다. 그래서 부하라 군대의 계급 체계를 보여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군 계급은 러시아 군대의 계급들을 따랐습니다. 에미리트 군대의 계급은 함께 다음과 같이 명명되었습니다.


Alaman (Nefer) - 병사 
Dog-Bashi - 부사관
Chur-Agasi - 선임하사
Mirza-bashi - 소위
Yuz-Bashi - 중위
Dzhivachi - 대위
Karaul-begi - 소령 
Mirahur - 중령
Tok-Saba - 대령
Datkho - 소장
Parvanchi - 중장

 

1. '캅카스' 에미르 기병 근위대

 

1. 카자크 '테레그' 연대

2. 카자크 '쿠반' 연대

3. 카자크 '아랍' 연대

4. 카자크 포병

5. 카자크 군악대

러시아 제국으로 부터 도입한 카자크 병과. 테레그, 쿠반, 아랍(또는 튀르크)등 3개 연대가 있습니다. 무장은 러시아식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테레그 연대는 에미르가 기병 장군이었기 때문에 테레그 연대가 가장 정예 부대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카자크는 기병 근위대였기 때문에 에미리트 국고에 의해 보급되었습니다. 

테레크 연대는 올드 카간(Old Kagan)에 주둔했으며, 약 900명의 대원이 각기 다른 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부사관은 모신나강 소총이나 영국식 소총을 가지고 있었고, 대원들은 베르단 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카트리지는 러시아 타입의 벨트나 소위 "아프간"이라고 불리는 영국-인도 모델의 가죽 "트라이앵글"에 착용되었습니다.

쿠반 연대는 올드 카간과 기차역에 주둔했습니다. 연대에는 약 360명의 병력이 있습니다. 연대의 4분의 1은 (모든 부사관 포함) 모신나강 소총으로 무장했고, 나머지는 베르단 소총으로 무장했습니다.

아랍 연대는 옛 부하라의 성문에 주둔하고 있는 100명, 카지 칼리얀 정원에는 200명으로 분리되어 주둔 했습니다. 최대 500명까지 병력이 혼합된 연대이며, 부하라 시민인 튀르그족으로 구성된 연대는 카르시, 구자라, 크레키켈리프, 부달리크, 테르메즈 등의 지역에 주둔했습니다.

카자크 군악대 사진.

2. 에미르 근위대

세케르데 "세르바차" (제1연대) : 

1. Сарбазы(병사)

2. 로브를 입은 Сарбазы

3. 참모 장교

세케르데 "튀르크바차"(터키 연대) : 

1. Сарбазы

세케르데 "아랍바차"(아랍 연대) : 

1. Сарбазы

2. 코트를 입은 Сарбазы

1918~1919년 부하라 군은 세 개의 호위 연대(세르케르드) - "세르바차", "투르크바차", "아랍바차"로 확대되었습니다.

호위 연대는 스타라이 마하사에 주둔했습니다. 이 연대는 해체된 "드질료" 회사로부터 믈로바차의 의용병들로부터 결성되었습니다. 병력은 약 천 명 정도였습니다. 병과는 기병과 보병이 있지만, 기록에 의하면 병사들이 행군하거나 말을 타기도 했지만, 모든 병사가 기병으로 사용될 수 있는지, 아니면 이 연대에 특수 기마부대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무장은 모신나강 소총입니다.

투르크 연대는 많은 연구자들이 보는 부하라군 최고의 부대라고 합니다. "Sirbazy-Piada"로도 알려진 이 부대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캅카스와 페르시아 전선에서 영국군에 의해 와해된 군대와 러시아에서 탈출한 오스만 제국 포로들을 규합된 연대입니다. 그리고 약 60-70명의 아프간인과 150여명의 사르트 및 키르기즈가 있었습니다. 이 연대의 병역은 10명의 터키 장교와 1.250명정도라고 합니다. 무장은 리엔필드 소총과 기관총 3정으로 무장 했습니다. 

아랍 연대는 400명의 병사가 있었습니다. 이들의 주류 민족은 아랍계 민족이 아니라 아프간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3. 장교

1. 상급 장교 하계 군복
2. 상급 장교 군
3. 참모 장교 하계 군복
4. 참모 장교 군복(제복)
5. 장군 군복(제복)

 

 

4. 보병 

Сарбазы(병사)
1. 하계 군복
2. 군복
3. 열병식 제복

보병 제복의 일부 변형 : 
1. 병사
2. 경찰

열병식 제복

 

하계 군악대
하계 군복

군대에는 사르바즈(Сарбазы) 10개 대대가 있었는데, 각 대대는 4개 중대였습니다. 에미리트군은 '토요일'과 '화요일' 두 요일로 나뉘었습니다다. 토, 일, 월에는 토요일. 수, 목에는 "토요일" 남자들을 섬겼다. 오전에는 2시간 동안 집회를 열었고, 나머지 하루는 경비 임무에 흡수되어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토요일이라고 명명된 3개 대대는 Krnka 소총과, 베르단 소총 II로 무장했습니다. 병사들은 막사에 복무했지만, 일부는 동네 여관에서 복무했다고 합니다. 병사들은 생계를 보장하기 위해 군복무로부터의 자유 시간이 허용되었습니다. 병사들은 평범한 민간복으로 갈아입고, 대체로 신발 수선이나 다른 작은 공예품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에 종사하고 했습니다.

월급은 한 달에 20텡게(루블 3개)를 받았고, 군복이 급여의 일부로 지급되었습니다. 만약 막사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했을 때, 하루에 10명당 한 그릇의 죽을 받았다고 합니다.

5. 부하라 경찰

1. 여름 제복

2. 겨울 제복

겨울 제복 사진 1
겨울 제복 사진 2

 

여름 제복 사진 1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에미르는 경찰을 적극적으로 창설했습니다. 경찰은 러시아 경찰에게서 제복을 도입했습니다. 경찰들은 나강이나 불독와 같은 리볼버 권총으로 무장했지만, 브라우닝과 같은 자동 권총으로 무장한 경우는 드물게 있었다고 합니다. 카트리지 파우치는 아프간식으로 착용했지만 소수의 파우치는 러시아 모델이었다고 합니다.

부하라의 훈장들.

부하라 에미리트군의 제식화기들. 이중 리엔필드와 빅커즈 기관총, 호치키스 기관총은 1920년 러시아 내전 당시 영국-인도 제국으로 부터 지원받은 부하라 말기 때 받은 무기라고 합니다.

부하라의 지방 군인들

 

볼셰비키의 부하라 점령 사진들.

부하라는 부하라 공산주의자들과 볼셰비키의 공세로 일주일 만에 함락되면서 부하라 에미리트는 멸망합니다. 이후 부하라 에미리트 잔존병들은 게릴라가 되어 바스마시 운동을 일으키고, 1930년대에 완전히 끝나게 되었습니다.

출처 : siberia-miniatures.ru/article_info.php?articles_id=1

Posted by 李蘭胡
歷史, history2020. 8. 2. 22:23

지금 이 시점에서 언론 신뢰도가 추락한 KBS, MBC에 비해서 수신료 값을 제대로 하고 아예 민족정론지라고까지 추앙받는 BBC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BBC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공영방송사이나 이런 BBC에도 흑역사가 있는 법. 1986년 BBC에서 있었던 한 드라마의 논란에 대해 알아봅니다. 

 

퍼시 토플리스(Percy Toplis 1896년 8월 6일 - 1920년 8월 6일).

우선 드라마의 소재 대상이었던 한 인물에 대해 알아봅니다. 퍼시 토플리스라는 인물은 일개 병사 신분이었고 범죄자이기 까지 합니다. 아마도 국내에서 소개하는 글은 이게 최초일 겁니다.

퍼시 토플리스는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삶은 스코틀랜드에서 전형적인 양아치처럼 살다가 기차표 없이 열차 무단 탑승으로 금고형 10일 받았고, 1912년에 15세 여아 강간 미수 혐의로 징역 2년 선고받고 1914년에 출소했습니다. 이후 1915년 육군 의무대로 입대한 후 들것병으로 갈리폴리나 이집트로 배치되었지만 말라리아에 걸려서 다시 영국으로 보내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인간은 1917년 인도 주둔군으로 배치받기 바로 전에 육군 대위의 군복을 훔쳐서 장교 사칭을 하고 당시 영국에서 호화 건축물이던 블랙웰을 공개적으로 방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방문으로 지역 신문에 실리게 되는데 이 기사는 경찰을 속이기 위해 사용되었다는데요. 이때 부터 오만가지 범죄 행각을 드러냈습니다.

1918년 사기죄로 다시 한번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다시 영국군에 입대하는데, 이번에는 육군 대령의 정복을 훔쳐서 보급품을 팔아먹거나, 위조서류를 만들어서 장병들의 월급을 횡령까지 하게 됩니다. 물론 토플리스 본인은 후방에서 여자랑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20년 4월 24일에 택시 운전사를 총으로 살해하여 덜미가 잡히고 말았고, 경찰과 총격전 끝에 사망했습니다.

여기까지 그는 군납비리와 장교 사칭 및 각종 범죄를 저지른 영국의 범죄자입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이라면 이 작자를 어떻게든 미화시킬 수 없을 겁니다.

 

오히려 영화 '더 캡틴'의 빌리 파울 헤롤트처럼 장교 사칭을 통해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과 적당히 각색을 하면 그럭저럭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좌파들은 이걸 성공시켰습니다.(?)

 

바로 "The Monocled Mutineer"라는 BBC의 드라마입니다. 제목은 장교를 사칭할 때 항상 모노클을 끼고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합니다. 시작은 1978년, 이 드라마의 원작인 윌리엄 앨리슨(William Alison)과 존 페어리(John Fairley)가 쓴 "The Monocled Mutineer"라는 책을 내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책 내용은 사실 토플리스는 1차 대전 당시 영국의 군사반란인 에타플 반란을 일으킨 주요 인물이고, 영국 정부에게 탄압받은 인물이라는 의혹을 재기해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당연히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는 저자가 에타플 반란 참여자라는 딱지 외에는 없지만, 이후 토플리스를 다룬 연극이 나오는가 하면, 아예 BBC가 1986년 직접 드라마를 만들어서 논란의 정점을 찍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는 토플리스를 억압적인 군부에 맞서는 노동자 계급의 영웅(?)으로 미화시켰습니다. 당연히 드라마 1회 방영부터 존 키건 및 참전 용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보수 언론에서 융단폭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PD는 "응 이거 다 사실이여~ 꼬우면 보지 말든가~"식으로 대응해서 오히려 논란에 기름을 부어서 더더욱 악화되었고, 고증 담당을 하던 역사학자도 '이건 오류투성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이 드라마는 망했습니다. 결국 논란 끝에 육군 기록을 펴내서 '에타플 반란 기간 동안 토플리스의 부대는 인도에 있다'로 팩트폭력을 가해버렸습니다. 하지만 BBC와 좌파 추종자들은 '그럼 그때 토플리스는 없지 않음?'이라고 반박하지만 위에 써져있는 탈영 기록으로 이 주장은 그냥 개소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 드라마 하나 때문에 BBC는 기소되어서 법적 제재받았다고 합니다.

이때 당시에는 마가렛 대처 집권 당시에 BBC가 특히 좌경화가 심했다고 합니다만, 정치가도 아닌 범죄자를 이렇게 미화시키고 법적 제재까지 받은 점에서 명백한 흑역사입니다.

이해가 쉽도록 대한민국으로 현지화하면 이렇습니다. 해방 이후 각종 범죄로 징역 살다온 양아치가 국방경비대로 입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국군 창설 당시에도 장교 사칭을 하면서 범죄를 저지르고 6.25 때 군수품을 팔아먹는 비리를 저지르다 결국 휴전 이후 총격전에서 사망합니다. 그리고 70년 뒤 M모 방송사에서 여순 반란의 주동자이자, 독재정권에서 탄압받은 비국민이라는 식으로 역사왜곡 드라마를 만듭니다. 

+

제목 수정했습니다. 지금보니 영국판 엄복동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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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타플 반란 : 1917년. 사기가 바닥난 상태에서 가혹한 훈련을 명령하자 일어난 반란, 니벨 공세 이후 프랑스군 상황을 생각하면 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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