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won/Serafin2024. 12. 23. 16:11

Serafin

답답하니 니가 선수로 뛰어

開市2022/06/1205:25 7 -

위의 대사는 기성용이 떠든 것으로 아는데 이후 기성용은 별거 없었습니다.


지들이 뭐라도 된 줄 알고 떠들어 대는데,


솔직히 딴 데는 모르겠으나 국내 스포츠에서 감독이라는 것들은 협회의 말만 잘 들어 주면 되는 직업이니 지나가는 개도 보이는 것을 일부러 못 보는 게 많습니다.


이 때 내가 뛰겠다 하고 말한 용자 하나 못 배출한 게 이 한심하기 짝이 없는 민좆이지요 우하하.


다들 개 돼지들만 있어서, 이들을 갖고 무슨 일을 할 수 없는 게 사실입니다.


====


디씨 대노인은 쓸만한 것들이 있어서 좀 보는데,


노르웨이 공주가 껌댕 영능력자와 사귄다면서 어쩌구 저쩌구 하는데, 알아 본 결과 그 공주는 50세로 딸이 3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주의 막내딸도 무슨 영능력이 있다고 하더군요. 순전이 대노인의 말이고 내가 알아 보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뜬, 그 껌댕이 대노인의 말로는 헐리우드 스타들을 카운슬링해주면서 이들의 불안한 마음을 진정시킨다고 하는데,


최면술을 잘 쓰는 것 같아보입니다.


대노인은 그런 영능력으로 지배층은 아직도 인간을 지배한다고 하면서 한반도와 유럽왕실의 관련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보고 나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헐리우드 스타들이라고 해 봐야 광대들에 불과할 뿐이고, 세계를 움직이는 레벨에 있따고는 볼 수 없습니다. (내가 세상을 보는 관점은 대노인과 같지 아니합니다.)


유럽력사를 잘 안다면 력사에 그런 인간들은 있었으나, 단지 몇 마디의 이야깃거리로만 지나가곤 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 직전에 파리에 나타나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귀족들을 꺠우치려 했던 "생 제르맹 백작" 이라는 자도 이런 류에 속하는 듯하나, 그냥 력사의 한 에피소드 정도로 남았고 그의 정체가 밝혀진 적도 없습니다.


(70-80년대에 나온 리더스다이제스트류의 책들에 이런 인물들이 심심치 않게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광대들이나 상담하던 그런 사람을, 그것도 껌댕을, 왕실에 출입 시키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거꾸로 그들이 다 된 것이다 라고 볼 수는 없나요? 우하하.


이것이 나는 서방 경험이 있고, 대노인은 그 출신은 자세히 말 안했으나 서방 경험이 없이 한국에서 글로만 읽어서(외국에서 산 일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차이를 잘 이해하지 못해서 나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음모론자들이 잘못 보는 것이, 그들의 힘이 영원할 것이라고 보는 점입니다. 나는, 설명하지 않을 몇 가지 경험으로 인하여, 그들에게도 약점이 있다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현 세대에 끝을 내지 못하면, 성자의 진영이 난다고 보고 있습니다.


====


코인들이 씹창이 나는데 , 코인재이들 방송 몇개 들어 보았는데 미국주식이 어쩌고 쥐나가 어쩌고 뭐가 어쩌고 엄청 떠들어 대더군요 우하하.


그런 걸 안다고 한들 코인에는 도움이 안될것이다 라고 보는 게 제 생각입니다.


코인은 세계에서 돈 움직이는 세력들의 힘으로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건 권도형 (루나) 사건 때에 이미 증명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코인타령입니다 우하하.


500억달러의 루나가 꼴랑 13억달러의 운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권도형은 한번 더 장사해 보려고 했는데 아주 미친놈이 아니고서야 이미 신용을 잃은 자에게 다시 투자할 리는 없지요.


혹자는 왜 조직들이 권도형을 안 죽이냐고 하는데 조직들은 권도형 따위 죽이는 것보단 돈 받는 게 우선입니다. 무슨 재주든지 부려서 돈 가져와야지 안 그러면 재미없다 이렇게 나오면 권도형은 무슨 쑈를 해서라도 돈을 바쳐야 합니다.


어쨌든, 정답은, 니들의 힘으론 백날 천날 분석해 봐야 다 헛수고다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하.


니들의 그 빈약한 통찰력과, 허접한 분석력으로, 백날천날 연구하고 떠들고 의견 받아 봐야, 수용소에서 오늘은 뭐가 나올까, 배추죽이 나올까 맹물죽이 나올까 싸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제 글이 다 그렇듯이 딴 데로 샜는데,


어쨌든, 지금까지 서구를 구축해 오던 그 무엇인가가 대단히 헐거워졌고, 이것을 잘만 하면 무너뜨릴 수도 있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서방에서 그래서 한국에 기대를 갖고 관심을 보였으나, 한국이 의외로 허당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고,


다 된 밥에 흙뿌리기 근성들이 작렬하는 바람에,


한국의 서구문명 구원도 물 건너가는 것 같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느냐? 그 이야기는 좀 생각해서 며칠 후 합니다.

Posted by 李蘭胡
PKwon/Serafin2024. 12. 23. 16:07

Serafin

리방과, 리척과 왕세자

魏晋2022/06/0616:06 11 -

력사에서 , 왕이 힘이 없으면 후계자부터 정하라고 을러댑니다.


리방과는 리방원이 직접 왕이 되기에는 명분이 없으니 왕을 잠시 시켜준 것이니만큼 그렇다 치더라도,


리척은 왕이 되자마자,


리은을 "황태자"로 봉해야 했습니다.


물론 나라가 거의 망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리은이 황태자가 된 건, 리척은 그냥 리은이 황제가 될 때까지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자에 불과하다,


이런 야그가 되고 만 것입니다.


실제로 리척이 죽자 리은이 "리왕" 이 되어서, 1945년까지 이어갔습니다.


죄선은 이렇게 시작할 때와 끝날 떄의 꼴이 똑같았습니다.


===


리왕건이 죽었을 때 의미있는 아들로는 리왕무, 리왕요, 리왕소가 있었습니다. (왕요 왕소 위에는 왕태라는 큰형이 있었으나 어려서 죽음)


리왕무의 외가는 반도 전남 나주 출신으로, 리왕요, 리왕소보다 훠-ㄹ씬 못했습니다. (다만 이것이 나비효과로 나중에 리왕순이

거란을 피해 도망갈 때 전남 나주로 갈 길이 열리기는 하지만)


리왕무가 즉위하자마자, 그의 외아들인 흥화군을 세자로 삼으려고 했으나,


리왕요, 리왕소가 형님 좀 돌으셨습니까 이렇게 나왔습니다 우하하.


신하들도, 리왕요, 리왕소가 리왕무보다 훠-ㄹ씬 쎄다는 걸 알고 있었기 떄문에,


아무도 리왕무의 말을 안 들었어요.


리왕무 개인은 무술이 뛰어났고 아버지를 따라 전쟁에 나가기도 하는 등 보통이 아니었으나,


궁중에까지 자객이 출몰하자, 정신이 무너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리왕무는 오로지 박술희와 함규(왕규)만을 믿었는데,


박술희는 군인으로 정치를 몰랐고, 함규의 세력도 그리 뛰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리왕요가 동원할 수 있는 군의 수가 함규의 군대보다 훠-ㄹ씬 많았던 것입니다.


결국 리식렴(왕식렴)이 일단 박술희를 제거한 후,


한줌도 안 되는 함규를 제거하니 리왕무는 죽게 된 것입니다.


=====



벌써부터, 김동연은 논외로 하더라도,


대통령급 인사가 오세훈, 홍준표는 광역자치단체장이 되었고,


안찰스는 국회로 돌아왔으며, 원희룡은 장관이 되었는데,


대통령 취임 한 달이 못 되어서, 벌써 죄선일보 등은 차기를 논하고 있어요! 우하하.


이것들이, 어데서 윤suck열은 오래 못 간다는 첩보라도 들었는지 참.


윤은 로또 세 개 맞을 확률로 대통령이 되었으며,


지방선거에서 사실상 김은혜가 패해 패배한 상황에서도,


엉뚱하게도 soccer장에 가서, 굳이 용산 집무실로 불러도 되는 손흥민을 만나러 갔습니다!


지금 손흥민 만나는 게 그리 중요한 일입니까? 우하하.


윤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위에 열거한 인간들보다는 윤이 낫다 생각해서 윤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마음으로 벌써부터 그렇게 풀어져선 안된다 이리 말하는데,


윤은, 나에게는 김건희, 건진법사, 한동훈이 있으니 걔들만 믿으면 된다 이런 사고방식으로 내 멋대로 , 하던 대로 살란다 이러고 사는 것 같습니다 하하.


또 윤이 후원회 사람들과 만나서 어느 술집에서 밤새 술을 마셨다는데,


경호상의 문제는 그렇다 치고, 윤이 만취해 있을 때에 북괴가 도발이라도 하면 어떡하라고 윤이 이렇게 절제를 못하느냐 이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하.


이로 볼 때 윤은 오히려 한타는 막았던 리왕무보다도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홍준표는 이제 4년간은 대구시장으로 아무 걱정 없으니 하고 싶은 말 다 처하면서 살 것입니다. 이미 아직 후보일 때에 윤희숙의 계양을 공천을 막아 리재명 당선에 공헌하였습니다.


오세훈도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인간은 아닙니다.


리왕무 즉위식이 끝나기도 전에 리왕요 리왕소에게 줄 서던 신료들의 모습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우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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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李蘭胡
PKwon/Serafin2024. 9. 16. 18:23

2023/05/18

쓸데없는 희망에 도박하는 건 다 죽자는 것이다

얼마 전에 홍팍에 올라왔던 만화인데 찾아 보니 네이버에서 '고랭순대'라는 사람이 그린 만화더군요.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gorangsundae&logNo=221993015859&navType=by

이 만화를 아마도 고랭순대(현재는 군복무 중이라 전하더군요) 는

https://youtu.be/m5JV4CHSiKw

이걸 보고 그린 것으로 보입니다. (연도는 1년 전이지만 더 오래 전에 나왔던 영상)

이런 사건은, 애비가 눈 딱 감고 아들의 머리를 부숴 남은 딸이라도 살려야 하는 상황인데,

애비가, 혹시라도 아들이 정상으로 돌아올까 하는 그 '막연한 기대' 때문에,

아들을 죽이지 못하다가 결국 다 죽는 이야기입니다.

위의 동영상에 대해서도 내가 전에 말한 바 있는데,

원래는 3형제인데 장남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이 없습니다.

장남은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걸 예감했기에, 도망갈 수 있을 때 미리 도망간 것일 겁니다.

차남이 저 꼴이 되어서 돌아왔을 때 한 명이 총대를 매고 죽여 없앴으면, 삼남도 죽지 않았을 것인데,

차남이 살아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죽이지 않아서 저 꼴이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존속살해를 하면 무조건 사형이었으나, 지금은 옛날과 많이 달라졌고, 솔직히 말해 술 많이 처먹고 보내버린 후 심신미약이다 하면, 피싸개들은 집유 내주기도 합니다.

영화 중에 '눈물이 주룩주룩' 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모리야마 료코의 노래를 영화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모리야마는 자기 친오빠의 죽음을 노래로 만든 것이라 아래 이야기와 경우가 다릅니다.

아들을 둔 녀자가 딸을 둔 남자와 재혼했고 남자는 죽었으며, 녀자는 죽으면서 아들에게 피가 섞이지 않은 녀동생을 잘 돌보라고 유언합니다. 무대는 오키나와입니다.

아들은 녀동생을 위해 견마지로하다가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결국 지쳐서 죽고 맙니다.

녀동생은 슬퍼하는데, 그 때까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할머니가 나타납니다.

할머니는, 그따위 껄로 슬퍼하지 말아라. 그는 죽었고 너는 살았다. 중요한 건 그뿐이다. 라고 말합니다.

녀동생은 눈물 몇 방울로 이 모든 것을 접어두고 , 자신의 삶으로 나아갑니다.

아들의 엄마는 남을 위해 희생하라고 가르쳐서 자기의 핏줄이 끊어졌지만,

(여기서 왜 이 배경이 오키나와인지가 나옵니다)

할머니는, 1945년 오키나와 전투에서 주위 사람들이 다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았고, 말은 하지 않으나 아무래도 살아남기 위해서 미군에게 몸을 팔든지 했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그러니 중요한 건 내 핏줄이 살아남은 것밖에 없고 나머지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이 사실을 알므로 그걸 자기 핏줄을 이어받은 녀동생에게 다시금 상기시킨 것입니다.

녀동생에게 양심이 있었으면 바다에 빠져버리는 것이 옳지 눈물이나 흘려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할머니는 남을 죽여서라도 자기 핏줄만 살아남으면 된다 이런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죄책감 갖지 말고 살아라 이렇게 가르친 것입니다.

나는 이런 가르침을 오랫동안 숙명론이라는 이름으로 설파하였으나, 중간에 그만 두었습니다. 지금도 다시 숙명론을 논할 마음은 없는데,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스스로 어떻게든 빠져 나가려는 자들은 기회가 있다 이런 이야기 되겠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들려 주던 이야기들, 배운 게 없는 자들은 그런 걸 전수하지 못해서 자식들도 시행착오를 겪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구수하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된 적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이야기는 지금 세상에서는 나 정도 되는 사람들이나 해 줍니다. 나는 목적이 없이 내가 쓰고 싶으니까 쓸 뿐이므로, 이런 이야기 아무렇지 않게 해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희망

이라는게 마약과도 같은가 봅니다... 안 되는걸 붙잡고(본인 능력 이상의 것) 한계치를 넘겨버리면 줄줄이 꿰여 망하는게 십중팔구에 절망을 넘어 여럿 사망하는 꼴 눈만 뜨고 보게되고, 기회라는것이 몇번씩이나 쉽게 주어지는것도 아닌데... 경험도 눈치도 부족하면 “최소한의 처세라는 것도 못한다“ 라는걸 알기에 폴권님이 풀어주시는 이야기에 감사할따름이지요.

2023/05/18 23:50 by dd URL

@dd

대부분의 사람들은 히망고문에 약합니다.

옛 어른들이 삼국지를 보라고 한 것도, 삼국지의 권모술수를 스는 자세를 배우라고 하는 것도 있지만, 다 부질없다 (합구필분 분구필합) 라는 걸 배우라고 한 것도 있습니다. ㅇ러 영웅들이 열심히 애썼지만 승자는 별로 한 것도 없는 사마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리 오래 가지도 못했음) . 즉 집착해 봐야 소용없다 이런 걸 이야기했고, 그래서 키타가타 겐조의 삼국지(한국에서는 '영웅삼국지'로 소개) 에서는, 일족이 다 살해되었던 마초가, 싸움이 부질없다고 생각하고 산에 들어가 도자기나 구우면서 여생을 보낸다는 것으로 끝을 냅니다.

전체적인 걸 볼 줄 알면 실수를 줄입니다.

2023/05/20 07:13 by PKwon URL

Posted by 李蘭胡
PKwon/우하하 연구2024. 8. 24. 16:53

서구 물질 문명의 몰락: 근본이론 (올두바이 이론) 제1부  

        

아무래도 근본이론이 있어야 서구문명의 몰락이 완전히 이해될 것 같아, 서구 물질문명의 몰락의 기본 패라다임을 제공한 리처드 덩컨 교수의 처음 글, 올두바이 이론이란 글을 전문 번역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96년 6월 27일에 발표된 이 글은, 논문에 가깝기 때문에 난해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dieoff.org/page125.htm

석유업계 인사이더들이나 힘있는 사람들, 또 학계에선 꽤 알려진 이론이지만, 일반에게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론입니다. 국내에선 제가 제일 처음 소개하는 게 될까요?

글이 길고 어려워서, 몇 부로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고스럽지만, 흥미 없는 부분도 전문 번역하겠습니다.

2000.12.20. Los Angeles에서 P.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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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두바이 이론:

산업화 이후의 석기시대로 흘러내리는 과정

리차드 덩컨 박사, 에너지와 인간 연구소, 1996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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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무로 불을 때건, 발전소를 짓건, 에너지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문명의 전제조건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1991년

1. 서문

1989년, 나는 공업문명 [이하 물질문명으로 번역] 의 평균수명은 무서울 정도로 짧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결론은, 계산 가능한 표와, 1인당 세계 에너지 사용과, 그리고 공업 문명의 간헐절 맥박 이론으로 얻어졌다. 나는 최고점을 1990년으로 보고, 계속되는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 때 이를 증명해 줄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매년 사용되는 에너지와 세계 인구의 비율은, 확실하고 실험 가능한 물질문명의 프로필을 주게 된다. 최근 6년간, 나는 이 이론을 뒷받침할 숫자적인  기반을 만들었고, 여러 개의 인구와 에너지 데이타들을 수집하여 시험해 보았다.

이 글에서 올두바이 이론은, 다른 논문에 나온 간헐적 맥박 이론과 동일하다.


1. 물질문명은, GATT, EU, NAFTA 같은 국제협약과, 모든 자본 투자를 말한다.

2. 세계의 에너지는, 석유, 가스, 석탄, 핵연료와 수력발전 등을 포함한다. 에너지와 인구에 대한 자료는, UN 등 여러 곳에서 얻을 수 있다.

3. 탄자니아에 이쓴ㄴ 올두바이 계곡은, 인간의 시작과 석기시대 생활방식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선, 올두바이 이론은 한 허상에 불과하다. 이것은, 우리가 석기시대로 돌아갈 날이 임박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림 1과 2를 꼭 보라. 그러나, 더 자세한 것을 논하기 전에, 나는 얘기 하나를 하고  싶다.

[그림 1,2는 후에 올리겠습니다. )





목차
  1. 서구문명 몰락의 근본이론 (올두바이 이론) 제2부  

  2. 서구문명 몰락의 근본이론 제3부-완결

  3.서구문명의 사형선고.... 집행일자    



1. 서구문명 몰락의 근본이론 (올두바이 이론) 제2부

이름:P.Kwon (caym2001@surfree.com)
작성일:2000.12.25(월) 14:17
        

이 글을 번역하면서 상당한 회의가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석유가 떨어지는 날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등이 모두 끝나는 날이 되고, 다시 권위주의, 봉건주의가 부활하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잉여인구들이 희생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번역하겠습니다.

2. 오딧세이: 나의 올두바이 이론을 찾기 위한 노력

나의 올두바이 이론에 대한 노력은, 32년 전 "인간과 은하계" 라는 강좌를, 워싱턴 대학에서 유명한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 경 [영국인으로 생각됩니다] 으로부터 들은 후에 시작되었다.

1964년 당시 호일 경의 말은 이러했다.

"만약에 인간이 지구에서 실패한다면, 다른 종의 생물이 일어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높은 지능을 갖는 면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곧 필요한 물질적 충분조건을 고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석탄도 없고, 석유도 없고, 질 높은 금속 광물도 없고, 어떤 종의 생물도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원시적인 조건으로부터 고급 기술로 발전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단 한번 뿐인 것이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태양계는 지능적인 면에서 실패한다. 다른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있고, 단 한 번 뿐일 것이다."

나는 관심있게 들었지만 경악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 말들은 믿을 수 없고, 해괴하고, 말도 안 되었지만, 피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석기시대로의 귀환이라고? 회복할 수 없는  문화적, 물질적 곤궁이라고? 그러나, 아무도 이를 관심갖는 이가 없었다. 호일이 소설을 쓰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그후 10년 동안, 별로 관심갖지 않고 내 길을 갔다.

그런데, 1975-76년에, 콜로라도에 모임이 있어 갔다가,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거대한, 버려진 지 오래 된 아나사지 인디안들의 절벽 가옥들을 보고는, 모든 문명은 잠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프레드 호일은, 수많은 학자들이 되풀이해 오던 식상한 소리를 했던 게 아니었다. (즉 문명은 끝없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난다는 것)

호일의 말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더욱 충격적이고, 더욱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세계 물질문명은  사이클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원샷" 이다. 한 번 뿐이다.

기하급수적인 성장과, 더욱 더 기하급수적인 하락, 그것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1985-92년까지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력 회사에서 일했다. 거기 있을 때에 나는 에티오피아, 중국, 인도, 소련 등지를 돌아 다녔다. 나는, 프레드 호일의 말이 옳은지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여행을 했다.

이 나라들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이냐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거의 모두 위험해 보였고,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나라들도 있었지만)

나는 서구물질문명의 평균수명이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공업화는 버텨낼 수 있는 정도로 발전하고 있지 않다. 그 반대이다 .호일의 말이 옳았다.

"이것은 한 번 뿐인 일이다. 한번의 기회가 있고 ,한 번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천 년? 백만 년?

그래서 1989년 동아프리카로 여행가기전에, 책을 좀 들여다 보았다. 그랬더니, 예상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표 1. 서구 물질문명의 평균수명 예상 수치들

할데인 (1927년) 3천 9백만년
러셀 (1949)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드레이크 (1961) 백만 년
왓슨 (1969) 아마도 수백만 년
어레스터 (1971) 자연적인 저항으로, 약 200년밖엔 못 갈 것이다.
미도우스 등등 (1972) 자연적인 저항으로, 100년에서 200년
오닐 (1976) 성공해도 실패할 것이다.
리키 (1977) 약 백년 간
해리스 (1977) 이슬 같은 것이리라.
크릭 (1981) 잠깐에서 한 만 년 정도?
라즐로 (1987) 아주 잠깐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 돌아와서, 나는 1989년 10월 미국 엔지니어링 교육 학회에 내기 위해 논문을 준비했다. 그 이름은, "진화, 기술, 그리고 자연환경: 인류사의 통합 이론" 이었다. 이것은 올두바이 이론이 세상에 나오는 계기였다. 나는 결론을 맺기를,
인류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산업화 이전의 시대로, 매우 길고 긴 안정의 시대로, 경제 성장은 간단한 도구와 약한 기계로 국한되어 있었다.

둘째, 즉 산업화 시대는 매우 짧은 불안정의 시대로, 새로운 강력한 기계들이 엄청난 폭발적인 힘으로 모든 성장의 한계를 일시 없앤 시기이다.

세번째, 탈(脫) 산업화 시대는, 바로 코앞에 와 있다.
이 시대는, 산업 경제들이 새로운 안정의 시대로 쇠락해 가는 시기로, 지하자윈의 고갈과 자연환경의 악화로 한정지어질 것이다.

이 논문에서 나는 1인당 세계 평균 에너지 사용이라는 새로운 평가 지표를 소개했다. 나는 절정을 1990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호일의 말과, 내가 세계를 다니면서 본 것 말고는 ?객관적인 확실한 자료가 없었다.

그런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의 1989년 9월호에, 기본스 등이 쓴 글에, 세계 에너지 1인당 평균 사용량은 1973년 절정에 이르고, 그 이후 서서히 하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림 2  참조 [위에 있습니다.]

처음에 말을 했을때 관심갖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고, 나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왔으나, 자료를 구할 수 없어, 몇 개의 논문을 내놓는 데에 그쳤다. 어떤 작은 저널의 편집자가 글을 요구해 오자, 나는 1993년
"물질 문명의 평균수명: 세계의 평준화로의 하락" 이런 글을 썼다.

이 글의 끝부분에, 나는 쓰기를,
"물질문명은 X라는 기간 동안의 한 번의 웨이브 모양으로서, 1인당 평균 에너지 사용량으로 계산할 수 있다. 물질문명의 평균수명은 100년이 못 된다." 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료는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1993년 초기에는 두 개의 새로운 데이타를 가지고 시험을 했다. 브리티시 석유회사의 에너지 자료와, 유엔의 인구자료였다.

그랬다! 올두바이의 증거는 드디어 나타났다! 두 자료는, 세계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1978년 절정에 이르고, 그 후에 줄어들었다고 했다. 올두바이 이론 하나만이 왜 그랬나를 설명할 수 있었다. 전통 경제학의 "폭발적 성장 이론", 이상적 경제학의 "안정 유지 이론" 모두 다 실패하였다.

1993년 후반기에는, 더 많은 데이타로 시험해 보았으나, 둘 다 절정은 1978년경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올두바이 이론이 한번 더 맞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유지상태.. 중도는 있는가? 물질문명의 순간 맥박이론" 이란 논문을 썼다.

나는 이 결과를 얻기 위해, 어려운 수학공식 같은 건 쓰지 않았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나눗셈, 세계 에너지 사용 / 세계인구, 이것만 했다. 그것이 중요하다.

세로운 에너지와 인구 데이타가 내게로 들어오는 동안, 다음 2년 반은 나는 더욱 더 정확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이론적으론 중요하지만, 여러분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올두바이 이론은 역사적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이 이론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계속]

  이름:P.Kwon (caym2001@surfree.com)
작성일:2000.12.25(월) 15:14

    서구문명 몰락의 근본이론 제3부-완결          


3. 동굴에서, 달로, 그리고 다시 동굴로.
달착륙은 피라밋과 같은 것이다. 다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알란 크로머,1993

아래의 그림을 잘 보라. 그림의 눈금 같은 것은 신경쓰지 말라.

그림  1. 물질문명의 올두바이 이론 [몰락이론]



1.  물질문명 전의 시대 (3백만년 전부터 1765년까지)

A. 도구의 제작 (3백만년 전)
B. 불의 발견 (1백만년 전)
C. 신석기의 농업혁명 (약 1만년 전)
D. 1765년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증기기관 시대

2. 물질문명 시대 (1930년부터 약 2025년까지)

E.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절정의 37%애 이르다.
[37%는, 1을 e=2.718.... 로 나눈 수치입니다.]
F. 에너지 사용의 절정  
G. 현재의 에너지 사용
H.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절정의 37%에 이름

3. 공업화 이후 시대 (2100년 이후)

J, K, L =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산업화 시도 실패

[대원군이 군함을 만들려다 망한 경우와 비슷합니다.]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할 수는 있다.

위의 표를, 1인당 수입으로 생각하여도 좋고, 물질적 생활수준으로 생각해도 좋지만, 원시인---우주인--- 원시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 빠를 것이다.

그림 1은, 세계의 긴 역사를 세 개의 시대로 갈랐다. 물질문명 전의 시대, 물질문명 시대, 그리고 물질문명 이후 시대. A부터 G까지는 절정까지 일어난 일들이고, H부터 L까지는 미래의 일이다.

물질문명 전 시대는, 수백만년의 지탱 가능한 조건을 가진 시기로, 모든 것은 태양으로부터 나오던 시기이다. 3백만년 전 인간의 조상들이 도구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도구들은, 더 많은 에너지 사용과, 의식주를 개선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불의 발견, 농업혁명 등의 중요한 사건들이 생겼다. 이 시기의 끝은, 1765년 제임스 와트가 압축 증기기관을 만들면서 끝났다.
제1시기는, 산업혁명이라는 전환기, 1765-1930, 를 맞으며 제2시기로 들어가게 된다.
제2시기는 물질문명 시대이다. 그림 1에서 줄쳐 놓은 시기이다. 물질문명의 평균수명은, 37% 지점들 사이이다. (E와 H  사이)

짧고, 대단한 시기로서, 교통, 상업, 공업이 주로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로 움직여진 시기이다. 역사적 데이타는, E와 G  사이를 절정기로 본다.
나는 물질문명의 시작을 1930년으로 본다.

1977년 이미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라. 시작된 지 50년도 안 되어서이다. 그림 1은 , 또 세계 에너지의 분수령을 보여준다.

역사상 처음으로,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절정에 이르렀고, 기울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 원시시대로 추락하는 길은 가파르고 빠를 것이다. I 이후, 물질문명 이후의 시대에서, 그 모든 물질 문명은,

[지금 이 문장이 중요합니다.]

농촌들과, 피를 나눈 부족들과, 도둑떼들로 완전히 부서질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저 연명해 나가는 선에서 완전한 자급자족을 "이룰" 것이다.

[지금 북한의 상황을 연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서울 구파발에서 차 타고 한 시간도 안 되는 곳에는, 이미 산업화 이후의 시대가 왔습니다.]

물론 다른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 조르제스쿠-뢰겐은, 1971년 말하기를, "인간은 딸기를 따 먹느니, 멸종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레슬리는 1996년 말하기를 "인간 멸종의 위기는 확실하다. 이제 이것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믿기 힘들다고? 그럴 것이다. 그러니 계산을 해 보자.

4. 에너지의 분수령, _/\_ 위로, 절정, 아래로.

물리학자들은 깨닫기를, 자신들이 어떤 이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이 이론이 실험 결과와 일치하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 리차드 페인만, 1985년



그림 2(2부에 있음, 프린트해서 보시길) 는 숫자적인 것이다. 물질문명의 절정기를 1950년에서 1995년 사이에 그린 그림이다. 이것의 축척은 중요하다.

이 표를 만드는 데에는 로머 (1985년) 와 기본스 등 (1989년) 의 영향이 컸다.
(기본스는 클린턴의 과학 자문위원을 맡았었다.)

[즉, 미국의 집권층, 상류층들은 이것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요.]

[표를 만드는 데에 대한 방법론이 장황하게 나와 있으나, 어렵고 중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생략했습니다. 혹시 관심있으시면 원문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표 2는 위의 데이타를 총합했습니다 모든 자료를 종합할 때, 세계에너지 사용량은 1977년 최고에 이르렀고, 그 이후 해마다 0.90%씩 하락하고 있습니다.

표 2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1978년에서 1977년으로 절정의 시기가 1년 앞당겨졌다.

표 2, 올두바이이론의 자료 시험
이름  발표년 자료시기 절정의 해 절정 사용량 발표년 사용량 하락기연대 하락률
로머, 1985년 1900-1983     1979    11.35       10.62           4     1.29%

기본스 1989년 1950-1985    1973    11.54        9.19          12     1.57%

덩컨 1989-1996 1900-1995   1978    11.47       10.24          17     0.63%

라이트  1996    1965-1994  1978    11.43       10.34          16     0.60%

평균치                     1977    11.45        0.90

단위는, 사용 배럴 수를 뜻한다.

자. 이제 대국적으로 한번 보자.

5. 부정할 수 없는 걸 부정하려 함

전체적으로 볼 때, 오만이나 집단 무지, 혹은 비겁함에 의해서만, 앞으로 올 재난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 마르그리트 유르쎄나르, 1951년

정신적 충격은 인간 탐구역사에 여러 번 일어났다. 이를 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자아를 높였을 뿐이고, 기득권층과  식상한 고정관념들을 결정적으로 바꾸진 못했다. 그러니까, 옛날의 여러 발견들은, 양성(良性) 발견이다. 그 이유는 이들의 말을 무시한다고 생활에 큰 불편이 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두바이 이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이유는, 좋든 싫든,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1989년 당시 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들이 모두 묻혀지고,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건축물들이 모두 가루가 되어 버릴 것이란 데에 대해 매우 깊히 우울증을 느꼈다.

그리고 내 자손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을까 하는 것도 매우 나를 슬프게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내 관점이 바뀌었다. 올두바이 이론은 다른 과학의 여러 이론과 다를 게 없다. 개인적인 생각은 모두 버렸다.

매년, 나는 자료를 모으고, 그림 2를 수정할 뿐이다. 그리고 그 이론이 진실이 되기를 볼 뿐이다. 올 것은 온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가오는 물질문명의 붕괴는 비극적이다. 피할 수 없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수백만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왜 자급자족하며 살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나 조심은 인간의 특성이 아니다. "우리의 성공조차 실패가 된다."

그리고 인간만의 잘못도 아니다.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은 매우 불리한 조건을 갖고 태어났다. 인간은 성적으로 다산(多産) 하고, 부족적이고, 근시안적이며 이기적이다.

그리고 수천년간 노력했어도, 문화나 문명은 인간의 본성을 바꾸지 못했고, 앞으로도 바꿀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미래로의 퇴보이며 과거로의 진보이다. 완전한 대칭이 아닌가?


6. 요약과 결론 [초역(抄譯)]

물질문명은 진화하지 않는다.
물질문명은 존재를 위해 "필요한 물질적 조건" 들을 급속도로 소비한다. 단기적이고,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

1인당 에너지 사용은 계산할 수 있는 물질문명화의 한 지수이다. 1989년 그림 1과 같이 올두바이 이론을 나는 주장했다.

물질문명의 평균수명은 100년 미만이다.

평균적으로, 세계 1인당 에너지사용량은 1977년 최대의 수치, 즉 절정에 이르렀다.

1977년부터 1995년까진 0.90%씩 하락하고 있다.

에너지 성장률보다 인구 증가율이 높으면, 1인당 에너지사용량은 줄어들 수밖엔 없다.

하락이 계속되고,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올두바이 이론은 감정이 난다고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위의 데이타를 반박할 뭔가가 나와야만  부정될 수 있다.

위의 글을 믿지 못하겠으면,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직접 계산해 보기 바란다. 만약에 내 말을 반박할 수 있다면, 내게 자료를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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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이가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쓴 글입니다만, 제가 보아도 맞는 말입니다.



  이름:P Kwon (caym2001@surfree.com)
작성일:2000.12.26(화) 11:24

   서구문명의 사형선고.... 집행일자          

올두바이 이론의 창시자인 리처드 덩컨 교수의 글로, 제가 저번에 번역하다 만 글에 있는 내용입니다.

http://www.dieoff.org/page224.htm


5. 올두바이 이론, 1930-2030

지구의 면역 시스템은, 말하자면, 인간의 존재를 느끼고 반역하려 하고 있다. 지구는 인간이라는 기생충의 감염을 스스로 치유하려고 하고 있다.

리처드 프레스톤, 1994년
(중략)

1930년... 세계 물질문명의 본격적인 시작.
1979년: 물질문명의 절정.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11.15배럴에 이름.
1999년:  싼 유가 시대의 종말.
2000년: 예루살렘에서 아랍인들의 본격적인 저할 시작.
2006년: 세계 원유 생산의 최고 절정.
2008년: OPEC의 세계 석유 공급이 과반수를 초과하게 됨.
2010년: 완전한 암흑 시대가 시작되는 곳들이 생김. (주로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2030년 : 1인당 석유소비량이 1930년대 수준으로 하락할 때, 서구물질문명은 종말을 맞게 됨.

여덟 개의 사건들이 서구물질문명을 정의하게 될 것이다.

1930년, 1인당 석유소비량은 3.32배럴에 이르러, 최고의 약 30%  레벨에 이르렀고, 여기서 서구물질문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9년 1인당 석유소비량은 11.15배럴에 이르러, 최고에 이르렀다.
1999년 유가상승으로, 싸구려 기름의 시대는 영원히 끝났다.
2000년 9월 28일, 예루살렘 사건은, 중동에 다시 전쟁의 시대가 온 것을 의미하며, 예루살렘 성전(聖戰) 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완만한 하락에서,, 급격한 하락으로 가는 계기이기도 하다.

올두바이 "미끄럼틀" 은 시작되었다.

2006년, 세계 석유생산은 최고에 이르를 것이다.
2008년, 오페크 국가들 11개국은 세계 석유의 51%를 생산하게 되며, 세계 거의 모든 석유 수출량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2011년, 미끄럼틀 시대는 끝난다.
이 때까지 1인당 석유사용량은 해마다 0.66%씩 하락하게 된다.

"절벽" 은 최후의 시대로써, 2012년경 드디어 암흑시대가 개막한다.

이 해에는, 완전한 암흑이 세계 여러 나라를 뒤덮을 것이다.  

처음에는 부분적인 정전으로 시작해서 장기적인 정전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전력 공급선 자체가 사멸하게 된다.

2030년, 세계 1인당 에너지 생산량은 1930년과 같아진다.

이 때에, 물질문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1인당 에너지 생산량 감소율의 속도는, 해마다 5.44%가 될 것이다.

"손은 쓰고, 움직인다." (다니엘서의 사건을 토대로)

전력 수급의 위기는 이제 다가왔다.


캘리포니아와 다른 지역의 전력수급위기는 미국의 오랜 경제성장의 부산물이다. 지나친 컴퓨터 사용, 인구 증가, 그리고 발전소 건설의 둔화와 전력 시장의 규제 완화 때문이다.

전력 부족이 동부에 이르르게 되면, 더 많은 미국인들이 환경보다는 전력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칼톤, 2000년

전력 비지네스는, 끊어지지 않는 전력수급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석탄이든, 원자력이든, 수력이든.

그래서, 엄청난 숫자의 천연가스 발전소들이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발전소를 수급하려면, 믿을 수 없을만큼의 가스가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추가수요를 채울 수 있는 수급원은 간단히 말해 존재하지 않는다.

시먼스, 2000년

서구문명은 전력의 포로가 되어 있다. 전력은, 세계의 에너지의 42%를 공급하고, 석유는 39%를  공급했다. 하지만, 전력의 질과, 원유로 얻어지는 에너지의 질은 다르다.

커피를 데울 때 1주울을 데우려면, 1주울의 석유를 태우는 것이나, 전력을 쓰는 것이나 똑같다. 그러나, 컴퓨터를 켜려면, 1주울의 전력을 얻으려면 3주울의 석유를 태워야 한다.

세계 물질문명에서 전기가 석유에 대해 차지하는 비중은, 99-1에 가깝다. 석탄, 수력,  원자력 등은 더욱 더하다.

킬로와트 만세!

올두바이식 대규모 몰살은 어디서 일어날 것인가?

답: 어디서나이다.

그러나, 대도시일 수로 더 그렇다. 전기가 다할 때에, 대도시는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층건물에 밀집되어 있으나, 주위에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뿐이다. 일도 없고, 음식도 없다.

그러므로, 전력이 다하게 되면, 대도시는 급속도로 버려질 것이다.

(전에 제가 올렸던 문명권, 비문명권의 지도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밤에 빛나는 곳들이다.

로스 엔젤레스, 뉴욕, 런던, 파리, 봄베이, 홍콩 등지는 지탱할 수 없는 위험지구가 될 것이다.

(원시반본) 다가오는 한국, 일본, 대만, 네델란드, 스위스, 싱가포르 등의 심각한 위기          


위의 지도를 보시면, 네델란드의 크기와 네델란드가 사용하는 자원의 양이 나와 있습니다.

네델란드의 국토면적은 작으나, 네델란드인들이 사용하는 자원을 생산하려면 네델란드 국토의  15배에 해당되는 면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요.

결국 다른 곳에서 사 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싸구려 중국 농산물들 때문에 국내의 농업이 완전히 몰락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에 위험한 일입니다.

유가가 상승하고, 중국에서 농산물을 수출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버텨낼 길이 없습니다.

근미래(近未來) 는, 자원 전쟁입니다. 서구 물질문명이 무너질 땐 무너지더라도, 전 세계의 수십억 인구를 지배했던 힘이니만큼 절대로 조용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때에 피해를 보는 것은, 면적이 적고 자원이 부족한 국가들입니다.

네델란드나 스위스는,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주변 국가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네델란드는 라인강의 출구를 막아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에 피해를 끼칠 수 있고, 스위스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숨겨놨기 때문에 어떻게든 도움이 있을 것임)

그러나,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등의 국가는 어렵습니다.

석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식량생산이 원활한 것도 아니고 (쌀만으론 살 수 없단 건 다 아시지요?), 외국에서 사 와야 하는데, 근미래에 유가가 급등할 때에 버틸 길이 없습니다.

하얼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칭(大慶) 에는 상당히 큰 유전이 있고, 우수리강 서쪽의 습지대에도 석유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번역해 올린 글들을 쓰신 분들은, 중국의 석유생산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료를 거의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칭은 제가 전에 그린 지도에서도 조선 영토 밖에 있었지만, 우수리강 서쪽은 당연히 서위압록, 동위토문에 의해 조선 영토였습니다.

지금 남지나해에 있는 남사군도에서 왜 계속 분쟁이 있습니까? 석유 때문입니다. 남사군도에 석유가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만, 필리핀, 말레이지아 등의 국가들이 분쟁하고 있는데, 사실 이 지역은 무인도로,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곳입니다. 다만 확실하게 누구의 소유였던 때는, 1942-1945년에 일본의 소유였었던 것 뿐입니다. (일본은 필리핀을 대리로 이 지역에 손을 뻗치고 있음)

여기 몇 번 올라온 중국전도에는, 남사군도가 중국 땅으로 나와 있습니다. 실제 그렇든, 안 그렇든 간에, 국내, 국외에 홍보하는 지도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근거가 있든, 없든 자기 나라 땅이라고 우기고, 필리핀의 대통령 에스트라다는 (지금은 탄핵재판 중이지만) 해양경비대를 보내 중국의 초소를 폭파했던 적도 있습니다.

필리핀이 중국에 대처할 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중국의 독수를 조금이라도 약화시켜 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유는 필리핀, 말레지아 같은 나라도 필요하지만, 한국,, 그리고 특히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러시아에서 사오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자원전쟁 시대인데, 자원의 보고이고 지금도 인구밀도가 낮은 동만주 지역은, 조선 후기까지도 조선의 영토였습니다.

(습지뿐이라고 우길 지도 모르겠으나, 이 지역은 중-러 국경에 가깝기 때문에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은 곳입니다.)

조선 영토가 압록, 두만 이북에 널리 뻗쳤다는 말을 빈정대고 이죽거리는 분들은, 20년 내로 후회하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뭏든, 자원전쟁 시대에, 작고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 특히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미합중국이라는 나라는,

전력고갈로 인하여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제가 글을 번역해 올리는 덩컨 교수님께선,

미국이 붕괴되면 전세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했지만,

제 생각에는 유럽 대륙 (영국 제외; 영국은 유럽의 왕따가 될 것임) 과 아시아는 어떻게든 일단은 버텨낼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미국인들은, 미국이 없어지면 세계가 없어지는 걸로 알고 있는 경향이 강합니다.

아뭏든, 그 원인은, 정리하자면 북미 대륙의 천연가스 고갈입니다.

멕시코의 천연가스 생산은 수요를 따르지 못해 미국에서 수입해야 하며,

캐나다는 자국의 수요증가로, 미국에 가스를 팔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미 대륙의 거의 모든 화력발전 시스템은, 석유가 비싸기 때문에 천연가스를 때고 있는데,

이것이 없어지면 거의 게임 오버라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원자력 발전 등으로 바꿀 순 있습니다만, 시설비도 많이 들고, 주문한다고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며 ,환경운동의 폐해를 뒤없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이젠 미국은 조용히 죽음을 기다려야 할 시한부 생명이지만,미국의 특성으로 볼 때 한번 골을 부리고 죽을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서구 물질 문명의 몰락: 근본이론 (올두바이 이론) 제1부  

        

아무래도 근본이론이 있어야 서구문명의 몰락이 완전히 이해될 것 같아, 서구 물질문명의 몰락의 기본 패라다임을 제공한 리처드 덩컨 교수의 처음 글, 올두바이 이론이란 글을 전문 번역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96년 6월 27일에 발표된 이 글은, 논문에 가깝기 때문에 난해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참고 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http://www.dieoff.org/page125.htm

석유업계 인사이더들이나 힘있는 사람들, 또 학계에선 꽤 알려진 이론이지만, 일반에게는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론입니다. 국내에선 제가 제일 처음 소개하는 게 될까요?

글이 길고 어려워서, 몇 부로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수고스럽지만, 흥미 없는 부분도 전문 번역하겠습니다.

2000.12.20. Los Angeles에서 P. 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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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두바이 이론:

산업화 이후의 석기시대로 흘러내리는 과정

리차드 덩컨 박사, 에너지와 인간 연구소, 1996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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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나무로 불을 때건, 발전소를 짓건, 에너지를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문명의 전제조건이다.

아이작 아시모프, 1991년

1. 서문

1989년, 나는 공업문명 [이하 물질문명으로 번역] 의 평균수명은 무서울 정도로 짧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 결론은, 계산 가능한 표와, 1인당 세계 에너지 사용과, 그리고 공업 문명의 간헐절 맥박 이론으로 얻어졌다. 나는 최고점을 1990년으로 보고, 계속되는 하락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나는 이 때 이를 증명해 줄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매년 사용되는 에너지와 세계 인구의 비율은, 확실하고 실험 가능한 물질문명의 프로필을 주게 된다. 최근 6년간, 나는 이 이론을 뒷받침할 숫자적인  기반을 만들었고, 여러 개의 인구와 에너지 데이타들을 수집하여 시험해 보았다.

이 글에서 올두바이 이론은, 다른 논문에 나온 간헐적 맥박 이론과 동일하다.


1. 물질문명은, GATT, EU, NAFTA 같은 국제협약과, 모든 자본 투자를 말한다.

2. 세계의 에너지는, 석유, 가스, 석탄, 핵연료와 수력발전 등을 포함한다. 에너지와 인구에 대한 자료는, UN 등 여러 곳에서 얻을 수 있다.

3. 탄자니아에 이쓴ㄴ 올두바이 계곡은, 인간의 시작과 석기시대 생활방식에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 여기선, 올두바이 이론은 한 허상에 불과하다. 이것은, 우리가 석기시대로 돌아갈 날이 임박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림 1과 2를 꼭 보라. 그러나, 더 자세한 것을 논하기 전에, 나는 얘기 하나를 하고  싶다.

[그림 1,2는 후에 올리겠습니다. )





목차
  1. 서구문명 몰락의 근본이론 (올두바이 이론) 제2부  

  2. 서구문명 몰락의 근본이론 제3부-완결

  3.서구문명의 사형선고.... 집행일자    



1. 서구문명 몰락의 근본이론 (올두바이 이론) 제2부

이름:P.Kwon (caym2001@surfree.com)
작성일:2000.12.25(월) 14:17
        

이 글을 번역하면서 상당한 회의가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석유가 떨어지는 날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민주주의 등등이 모두 끝나는 날이 되고, 다시 권위주의, 봉건주의가 부활하는 날이 될 것이기 때문에, 엄청난 잉여인구들이 희생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번역하겠습니다.

2. 오딧세이: 나의 올두바이 이론을 찾기 위한 노력

나의 올두바이 이론에 대한 노력은, 32년 전 "인간과 은하계" 라는 강좌를, 워싱턴 대학에서 유명한 천문학자 프레드 호일 경 [영국인으로 생각됩니다] 으로부터 들은 후에 시작되었다.

1964년 당시 호일 경의 말은 이러했다.

"만약에 인간이 지구에서 실패한다면, 다른 종의 생물이 일어날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높은 지능을 갖는 면에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곧 필요한 물질적 충분조건을 고갈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석탄도 없고, 석유도 없고, 질 높은 금속 광물도 없고, 어떤 종의 생물도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원시적인 조건으로부터 고급 기술로 발전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단 한번 뿐인 것이다. 우리가 실패한다면, 태양계는 지능적인 면에서 실패한다. 다른 시스템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 한 번의 기회가 있고, 단 한 번 뿐일 것이다."

나는 관심있게 들었지만 경악했다. 그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한 말들은 믿을 수 없고, 해괴하고, 말도 안 되었지만, 피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석기시대로의 귀환이라고? 회복할 수 없는  문화적, 물질적 곤궁이라고? 그러나, 아무도 이를 관심갖는 이가 없었다. 호일이 소설을 쓰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그래서, 나는 그후 10년 동안, 별로 관심갖지 않고 내 길을 갔다.

그런데, 1975-76년에, 콜로라도에 모임이 있어 갔다가, 메사 베르데 국립공원에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거대한, 버려진 지 오래 된 아나사지 인디안들의 절벽 가옥들을 보고는, 모든 문명은 잠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프레드 호일은, 수많은 학자들이 되풀이해 오던 식상한 소리를 했던 게 아니었다. (즉 문명은 끝없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난다는 것)

호일의 말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더욱 충격적이고, 더욱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세계 물질문명은  사이클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원샷" 이다. 한 번 뿐이다.

기하급수적인 성장과, 더욱 더 기하급수적인 하락, 그것뿐이다.
시간이 지나고, 1985-92년까지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력 회사에서 일했다. 거기 있을 때에 나는 에티오피아, 중국, 인도, 소련 등지를 돌아 다녔다. 나는, 프레드 호일의 말이 옳은지를 알아보고 싶은 마음으로 여행을 했다.

이 나라들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이냐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거의 모두 위험해 보였고,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나라들도 있었지만)

나는 서구물질문명의 평균수명이 알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공업화는 버텨낼 수 있는 정도로 발전하고 있지 않다. 그 반대이다 .호일의 말이 옳았다.

"이것은 한 번 뿐인 일이다. 한번의 기회가 있고 ,한 번 뿐이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천 년? 백만 년?

그래서 1989년 동아프리카로 여행가기전에, 책을 좀 들여다 보았다. 그랬더니, 예상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표 1. 서구 물질문명의 평균수명 예상 수치들

할데인 (1927년) 3천 9백만년
러셀 (1949)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드레이크 (1961) 백만 년
왓슨 (1969) 아마도 수백만 년
어레스터 (1971) 자연적인 저항으로, 약 200년밖엔 못 갈 것이다.
미도우스 등등 (1972) 자연적인 저항으로, 100년에서 200년
오닐 (1976) 성공해도 실패할 것이다.
리키 (1977) 약 백년 간
해리스 (1977) 이슬 같은 것이리라.
크릭 (1981) 잠깐에서 한 만 년 정도?
라즐로 (1987) 아주 잠깐에서 아주 오랫동안?

사우디아라비아에 돌아와서, 나는 1989년 10월 미국 엔지니어링 교육 학회에 내기 위해 논문을 준비했다. 그 이름은, "진화, 기술, 그리고 자연환경: 인류사의 통합 이론" 이었다. 이것은 올두바이 이론이 세상에 나오는 계기였다. 나는 결론을 맺기를,
인류사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산업화 이전의 시대로, 매우 길고 긴 안정의 시대로, 경제 성장은 간단한 도구와 약한 기계로 국한되어 있었다.

둘째, 즉 산업화 시대는 매우 짧은 불안정의 시대로, 새로운 강력한 기계들이 엄청난 폭발적인 힘으로 모든 성장의 한계를 일시 없앤 시기이다.

세번째, 탈(脫) 산업화 시대는, 바로 코앞에 와 있다.
이 시대는, 산업 경제들이 새로운 안정의 시대로 쇠락해 가는 시기로, 지하자윈의 고갈과 자연환경의 악화로 한정지어질 것이다.

이 논문에서 나는 1인당 세계 평균 에너지 사용이라는 새로운 평가 지표를 소개했다. 나는 절정을 1990년이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호일의 말과, 내가 세계를 다니면서 본 것 말고는 ?객관적인 확실한 자료가 없었다.

그런데,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의 1989년 9월호에, 기본스 등이 쓴 글에, 세계 에너지 1인당 평균 사용량은 1973년 절정에 이르고, 그 이후 서서히 하락하고 있다고 했다. 그림 2  참조 [위에 있습니다.]

처음에 말을 했을때 관심갖는 사람은 몇 명에 불과했고, 나는 더 많은 자료가 필요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왔으나, 자료를 구할 수 없어, 몇 개의 논문을 내놓는 데에 그쳤다. 어떤 작은 저널의 편집자가 글을 요구해 오자, 나는 1993년
"물질 문명의 평균수명: 세계의 평준화로의 하락" 이런 글을 썼다.

이 글의 끝부분에, 나는 쓰기를,
"물질문명은 X라는 기간 동안의 한 번의 웨이브 모양으로서, 1인당 평균 에너지 사용량으로 계산할 수 있다. 물질문명의 평균수명은 100년이 못 된다." 라고  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료는 없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1993년 초기에는 두 개의 새로운 데이타를 가지고 시험을 했다. 브리티시 석유회사의 에너지 자료와, 유엔의 인구자료였다.

그랬다! 올두바이의 증거는 드디어 나타났다! 두 자료는, 세계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1978년 절정에 이르고, 그 후에 줄어들었다고 했다. 올두바이 이론 하나만이 왜 그랬나를 설명할 수 있었다. 전통 경제학의 "폭발적 성장 이론", 이상적 경제학의 "안정 유지 이론" 모두 다 실패하였다.

1993년 후반기에는, 더 많은 데이타로 시험해 보았으나, 둘 다 절정은 1978년경이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올두바이 이론이 한번 더 맞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생존유지상태.. 중도는 있는가? 물질문명의 순간 맥박이론" 이란 논문을 썼다.

나는 이 결과를 얻기 위해, 어려운 수학공식 같은 건 쓰지 않았다.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나눗셈, 세계 에너지 사용 / 세계인구, 이것만 했다. 그것이 중요하다.

세로운 에너지와 인구 데이타가 내게로 들어오는 동안, 다음 2년 반은 나는 더욱 더 정확한 방법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이론적으론 중요하지만, 여러분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올두바이 이론은 역사적 자료만으로도 충분히 증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 이제 이 이론을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계속]

  이름:P.Kwon (caym2001@surfree.com)
작성일:2000.12.25(월) 15:14

    서구문명 몰락의 근본이론 제3부-완결          


3. 동굴에서, 달로, 그리고 다시 동굴로.
달착륙은 피라밋과 같은 것이다. 다시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알란 크로머,1993

아래의 그림을 잘 보라. 그림의 눈금 같은 것은 신경쓰지 말라.

그림  1. 물질문명의 올두바이 이론 [몰락이론]



1.  물질문명 전의 시대 (3백만년 전부터 1765년까지)

A. 도구의 제작 (3백만년 전)
B. 불의 발견 (1백만년 전)
C. 신석기의 농업혁명 (약 1만년 전)
D. 1765년 와트의 증기기관 발명: 증기기관 시대

2. 물질문명 시대 (1930년부터 약 2025년까지)

E.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절정의 37%애 이르다.
[37%는, 1을 e=2.718.... 로 나눈 수치입니다.]
F. 에너지 사용의 절정  
G. 현재의 에너지 사용
H.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절정의 37%에 이름

3. 공업화 이후 시대 (2100년 이후)

J, K, L =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산업화 시도 실패

[대원군이 군함을 만들려다 망한 경우와 비슷합니다.]
다른 시나리오도 가능할 수는 있다.

위의 표를, 1인당 수입으로 생각하여도 좋고, 물질적 생활수준으로 생각해도 좋지만, 원시인---우주인--- 원시인으로 생각하는 것이 제일 빠를 것이다.

그림 1은, 세계의 긴 역사를 세 개의 시대로 갈랐다. 물질문명 전의 시대, 물질문명 시대, 그리고 물질문명 이후 시대. A부터 G까지는 절정까지 일어난 일들이고, H부터 L까지는 미래의 일이다.

물질문명 전 시대는, 수백만년의 지탱 가능한 조건을 가진 시기로, 모든 것은 태양으로부터 나오던 시기이다. 3백만년 전 인간의 조상들이 도구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도구들은, 더 많은 에너지 사용과, 의식주를 개선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불의 발견, 농업혁명 등의 중요한 사건들이 생겼다. 이 시기의 끝은, 1765년 제임스 와트가 압축 증기기관을 만들면서 끝났다.
제1시기는, 산업혁명이라는 전환기, 1765-1930, 를 맞으며 제2시기로 들어가게 된다.
제2시기는 물질문명 시대이다. 그림 1에서 줄쳐 놓은 시기이다. 물질문명의 평균수명은, 37% 지점들 사이이다. (E와 H  사이)

짧고, 대단한 시기로서, 교통, 상업, 공업이 주로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로 움직여진 시기이다. 역사적 데이타는, E와 G  사이를 절정기로 본다.
나는 물질문명의 시작을 1930년으로 본다.

1977년 이미 절정에 이르렀음을 보라. 시작된 지 50년도 안 되어서이다. 그림 1은 , 또 세계 에너지의 분수령을 보여준다.

역사상 처음으로,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절정에 이르렀고, 기울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이 원시시대로 추락하는 길은 가파르고 빠를 것이다. I 이후, 물질문명 이후의 시대에서, 그 모든 물질 문명은,

[지금 이 문장이 중요합니다.]

농촌들과, 피를 나눈 부족들과, 도둑떼들로 완전히 부서질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그저 연명해 나가는 선에서 완전한 자급자족을 "이룰" 것이다.

[지금 북한의 상황을 연상하시면 될 것입니다. 서울 구파발에서 차 타고 한 시간도 안 되는 곳에는, 이미 산업화 이후의 시대가 왔습니다.]

물론 다른 시나리오도 있을 수 있다. 조르제스쿠-뢰겐은, 1971년 말하기를, "인간은 딸기를 따 먹느니, 멸종의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라고 했다. 레슬리는 1996년 말하기를 "인간 멸종의 위기는 확실하다. 이제 이것을 다시 생각할 때가 되었다." 라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여기서는 중요하지 않다.

믿기 힘들다고? 그럴 것이다. 그러니 계산을 해 보자.

4. 에너지의 분수령, _/\_ 위로, 절정, 아래로.

물리학자들은 깨닫기를, 자신들이 어떤 이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중요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았다. 중요한 것은 오직 이 이론이 실험 결과와 일치하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 리차드 페인만, 1985년



그림 2(2부에 있음, 프린트해서 보시길) 는 숫자적인 것이다. 물질문명의 절정기를 1950년에서 1995년 사이에 그린 그림이다. 이것의 축척은 중요하다.

이 표를 만드는 데에는 로머 (1985년) 와 기본스 등 (1989년) 의 영향이 컸다.
(기본스는 클린턴의 과학 자문위원을 맡았었다.)

[즉, 미국의 집권층, 상류층들은 이것에 대해 알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국민들은 잘 모르지만요.]

[표를 만드는 데에 대한 방법론이 장황하게 나와 있으나, 어렵고 중요한 내용이 아니기 때문에 생략했습니다. 혹시 관심있으시면 원문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표 2는 위의 데이타를 총합했습니다 모든 자료를 종합할 때, 세계에너지 사용량은 1977년 최고에 이르렀고, 그 이후 해마다 0.90%씩 하락하고 있습니다.

표 2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1978년에서 1977년으로 절정의 시기가 1년 앞당겨졌다.

표 2, 올두바이이론의 자료 시험
이름  발표년 자료시기 절정의 해 절정 사용량 발표년 사용량 하락기연대 하락률
로머, 1985년 1900-1983     1979    11.35       10.62           4     1.29%

기본스 1989년 1950-1985    1973    11.54        9.19          12     1.57%

덩컨 1989-1996 1900-1995   1978    11.47       10.24          17     0.63%

라이트  1996    1965-1994  1978    11.43       10.34          16     0.60%

평균치                     1977    11.45        0.90

단위는, 사용 배럴 수를 뜻한다.

자. 이제 대국적으로 한번 보자.

5. 부정할 수 없는 걸 부정하려 함

전체적으로 볼 때, 오만이나 집단 무지, 혹은 비겁함에 의해서만, 앞으로 올 재난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 마르그리트 유르쎄나르, 1951년

정신적 충격은 인간 탐구역사에 여러 번 일어났다. 이를 혁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인간의 자아를 높였을 뿐이고, 기득권층과  식상한 고정관념들을 결정적으로 바꾸진 못했다. 그러니까, 옛날의 여러 발견들은, 양성(良性) 발견이다. 그 이유는 이들의 말을 무시한다고 생활에 큰 불편이 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두바이 이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 이유는, 좋든 싫든, 거의 모든 사람들의 삶에 아주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1989년 당시 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업적들이 모두 묻혀지고, 우리의 가장 사랑하는 건축물들이 모두 가루가 되어 버릴 것이란 데에 대해 매우 깊히 우울증을 느꼈다.

그리고 내 자손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을까 하는 것도 매우 나를 슬프게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내 관점이 바뀌었다. 올두바이 이론은 다른 과학의 여러 이론과 다를 게 없다. 개인적인 생각은 모두 버렸다.

매년, 나는 자료를 모으고, 그림 2를 수정할 뿐이다. 그리고 그 이론이 진실이 되기를 볼 뿐이다. 올 것은 온다.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다가오는 물질문명의 붕괴는 비극적이다. 피할 수 없었던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 수백만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왜 자급자족하며 살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나 조심은 인간의 특성이 아니다. "우리의 성공조차 실패가 된다."

그리고 인간만의 잘못도 아니다. 자연 선택에 의해, 인간은 매우 불리한 조건을 갖고 태어났다. 인간은 성적으로 다산(多産) 하고, 부족적이고, 근시안적이며 이기적이다.

그리고 수천년간 노력했어도, 문화나 문명은 인간의 본성을 바꾸지 못했고, 앞으로도 바꿀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

미래로의 퇴보이며 과거로의 진보이다. 완전한 대칭이 아닌가?


6. 요약과 결론 [초역(抄譯)]

물질문명은 진화하지 않는다.
물질문명은 존재를 위해 "필요한 물질적 조건" 들을 급속도로 소비한다. 단기적이고,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

1인당 에너지 사용은 계산할 수 있는 물질문명화의 한 지수이다. 1989년 그림 1과 같이 올두바이 이론을 나는 주장했다.

물질문명의 평균수명은 100년 미만이다.

평균적으로, 세계 1인당 에너지사용량은 1977년 최대의 수치, 즉 절정에 이르렀다.

1977년부터 1995년까진 0.90%씩 하락하고 있다.

에너지 성장률보다 인구 증가율이 높으면, 1인당 에너지사용량은 줄어들 수밖엔 없다.

하락이 계속되고,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석기시대로 돌아갈 것이다.

올두바이 이론은 감정이 난다고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위의 데이타를 반박할 뭔가가 나와야만  부정될 수 있다.

위의 글을 믿지 못하겠으면, 도서관이나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 직접 계산해 보기 바란다. 만약에 내 말을 반박할 수 있다면, 내게 자료를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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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 이가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쓴 글입니다만, 제가 보아도 맞는 말입니다.



  이름:P Kwon (caym2001@surfree.com)
작성일:2000.12.26(화) 11:24

   서구문명의 사형선고.... 집행일자          

올두바이 이론의 창시자인 리처드 덩컨 교수의 글로, 제가 저번에 번역하다 만 글에 있는 내용입니다.

http://www.dieoff.org/page224.htm


5. 올두바이 이론, 1930-2030

지구의 면역 시스템은, 말하자면, 인간의 존재를 느끼고 반역하려 하고 있다. 지구는 인간이라는 기생충의 감염을 스스로 치유하려고 하고 있다.

리처드 프레스톤, 1994년
(중략)

1930년... 세계 물질문명의 본격적인 시작.
1979년: 물질문명의 절정.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이 11.15배럴에 이름.
1999년:  싼 유가 시대의 종말.
2000년: 예루살렘에서 아랍인들의 본격적인 저할 시작.
2006년: 세계 원유 생산의 최고 절정.
2008년: OPEC의 세계 석유 공급이 과반수를 초과하게 됨.
2010년: 완전한 암흑 시대가 시작되는 곳들이 생김. (주로 제3세계 국가들로부터)
2030년 : 1인당 석유소비량이 1930년대 수준으로 하락할 때, 서구물질문명은 종말을 맞게 됨.

여덟 개의 사건들이 서구물질문명을 정의하게 될 것이다.

1930년, 1인당 석유소비량은 3.32배럴에 이르러, 최고의 약 30%  레벨에 이르렀고, 여기서 서구물질문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979년 1인당 석유소비량은 11.15배럴에 이르러, 최고에 이르렀다.
1999년 유가상승으로, 싸구려 기름의 시대는 영원히 끝났다.
2000년 9월 28일, 예루살렘 사건은, 중동에 다시 전쟁의 시대가 온 것을 의미하며, 예루살렘 성전(聖戰) 의 시작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완만한 하락에서,, 급격한 하락으로 가는 계기이기도 하다.

올두바이 "미끄럼틀" 은 시작되었다.

2006년, 세계 석유생산은 최고에 이르를 것이다.
2008년, 오페크 국가들 11개국은 세계 석유의 51%를 생산하게 되며, 세계 거의 모든 석유 수출량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2011년, 미끄럼틀 시대는 끝난다.
이 때까지 1인당 석유사용량은 해마다 0.66%씩 하락하게 된다.

"절벽" 은 최후의 시대로써, 2012년경 드디어 암흑시대가 개막한다.

이 해에는, 완전한 암흑이 세계 여러 나라를 뒤덮을 것이다.  

처음에는 부분적인 정전으로 시작해서 장기적인 정전으로 나아가다가, 결국 전력 공급선 자체가 사멸하게 된다.

2030년, 세계 1인당 에너지 생산량은 1930년과 같아진다.

이 때에, 물질문명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갈 것이다.

1인당 에너지 생산량 감소율의 속도는, 해마다 5.44%가 될 것이다.

"손은 쓰고, 움직인다." (다니엘서의 사건을 토대로)

전력 수급의 위기는 이제 다가왔다.


캘리포니아와 다른 지역의 전력수급위기는 미국의 오랜 경제성장의 부산물이다. 지나친 컴퓨터 사용, 인구 증가, 그리고 발전소 건설의 둔화와 전력 시장의 규제 완화 때문이다.

전력 부족이 동부에 이르르게 되면, 더 많은 미국인들이 환경보다는 전력을 선택하려 할 것이다.

칼톤, 2000년

전력 비지네스는, 끊어지지 않는 전력수급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석탄이든, 원자력이든, 수력이든.

그래서, 엄청난 숫자의 천연가스 발전소들이 건설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발전소를 수급하려면, 믿을 수 없을만큼의 가스가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추가수요를 채울 수 있는 수급원은 간단히 말해 존재하지 않는다.

시먼스, 2000년

서구문명은 전력의 포로가 되어 있다. 전력은, 세계의 에너지의 42%를 공급하고, 석유는 39%를  공급했다. 하지만, 전력의 질과, 원유로 얻어지는 에너지의 질은 다르다.

커피를 데울 때 1주울을 데우려면, 1주울의 석유를 태우는 것이나, 전력을 쓰는 것이나 똑같다. 그러나, 컴퓨터를 켜려면, 1주울의 전력을 얻으려면 3주울의 석유를 태워야 한다.

세계 물질문명에서 전기가 석유에 대해 차지하는 비중은, 99-1에 가깝다. 석탄, 수력,  원자력 등은 더욱 더하다.

킬로와트 만세!

올두바이식 대규모 몰살은 어디서 일어날 것인가?

답: 어디서나이다.

그러나, 대도시일 수로 더 그렇다. 전기가 다할 때에, 대도시는 죽음의 땅이 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층건물에 밀집되어 있으나, 주위에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뿐이다. 일도 없고, 음식도 없다.

그러므로, 전력이 다하게 되면, 대도시는 급속도로 버려질 것이다.

(전에 제가 올렸던 문명권, 비문명권의 지도를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밤에 빛나는 곳들이다.

로스 엔젤레스, 뉴욕, 런던, 파리, 봄베이, 홍콩 등지는 지탱할 수 없는 위험지구가 될 것이다.

(원시반본) 다가오는 한국, 일본, 대만, 네델란드, 스위스, 싱가포르 등의 심각한 위기          


위의 지도를 보시면, 네델란드의 크기와 네델란드가 사용하는 자원의 양이 나와 있습니다.

네델란드의 국토면적은 작으나, 네델란드인들이 사용하는 자원을 생산하려면 네델란드 국토의  15배에 해당되는 면적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지요.

결국 다른 곳에서 사 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싸구려 중국 농산물들 때문에 국내의 농업이 완전히 몰락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에 위험한 일입니다.

유가가 상승하고, 중국에서 농산물을 수출하지 못하는 일이 생기면, 버텨낼 길이 없습니다.

근미래(近未來) 는, 자원 전쟁입니다. 서구 물질문명이 무너질 땐 무너지더라도, 전 세계의 수십억 인구를 지배했던 힘이니만큼 절대로 조용히 무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때에 피해를 보는 것은, 면적이 적고 자원이 부족한 국가들입니다.

네델란드나 스위스는, 사정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주변 국가들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네델란드는 라인강의 출구를 막아 독일, 벨기에, 스위스 등에 피해를 끼칠 수 있고, 스위스는 많은 사람들이 돈을 숨겨놨기 때문에 어떻게든 도움이 있을 것임)

그러나,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등의 국가는 어렵습니다.

석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식량생산이 원활한 것도 아니고 (쌀만으론 살 수 없단 건 다 아시지요?), 외국에서 사 와야 하는데, 근미래에 유가가 급등할 때에 버틸 길이 없습니다.

하얼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다칭(大慶) 에는 상당히 큰 유전이 있고, 우수리강 서쪽의 습지대에도 석유가 날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번역해 올린 글들을 쓰신 분들은, 중국의 석유생산에 대해선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자료를 거의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다칭은 제가 전에 그린 지도에서도 조선 영토 밖에 있었지만, 우수리강 서쪽은 당연히 서위압록, 동위토문에 의해 조선 영토였습니다.

지금 남지나해에 있는 남사군도에서 왜 계속 분쟁이 있습니까? 석유 때문입니다. 남사군도에 석유가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중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대만, 필리핀, 말레이지아 등의 국가들이 분쟁하고 있는데, 사실 이 지역은 무인도로, 누구의 소유도 아니었던 곳입니다. 다만 확실하게 누구의 소유였던 때는, 1942-1945년에 일본의 소유였었던 것 뿐입니다. (일본은 필리핀을 대리로 이 지역에 손을 뻗치고 있음)

여기 몇 번 올라온 중국전도에는, 남사군도가 중국 땅으로 나와 있습니다. 실제 그렇든, 안 그렇든 간에, 국내, 국외에 홍보하는 지도는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렇게 근거가 있든, 없든 자기 나라 땅이라고 우기고, 필리핀의 대통령 에스트라다는 (지금은 탄핵재판 중이지만) 해양경비대를 보내 중국의 초소를 폭파했던 적도 있습니다.

필리핀이 중국에 대처할 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라도 해서 중국의 독수를 조금이라도 약화시켜 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원유는 필리핀, 말레지아 같은 나라도 필요하지만, 한국,, 그리고 특히 일본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러시아에서 사오는 것도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래는 자원전쟁 시대인데, 자원의 보고이고 지금도 인구밀도가 낮은 동만주 지역은, 조선 후기까지도 조선의 영토였습니다.

(습지뿐이라고 우길 지도 모르겠으나, 이 지역은 중-러 국경에 가깝기 때문에 군사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은 곳입니다.)

조선 영토가 압록, 두만 이북에 널리 뻗쳤다는 말을 빈정대고 이죽거리는 분들은, 20년 내로 후회하게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뭏든, 자원전쟁 시대에, 작고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 특히 한국, 일본, 대만, 싱가포르 등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07년, 미합중국이라는 나라는,

전력고갈로 인하여 거의 회복이 불가능한 절망적인 위기를 맞게 될 것입니다.

제가 글을 번역해 올리는 덩컨 교수님께선,

미국이 붕괴되면 전세계가 붕괴될 것이라고 했지만,

제 생각에는 유럽 대륙 (영국 제외; 영국은 유럽의 왕따가 될 것임) 과 아시아는 어떻게든 일단은 버텨낼 것으로 보입니다.

원래 미국인들은, 미국이 없어지면 세계가 없어지는 걸로 알고 있는 경향이 강합니다.

아뭏든, 그 원인은, 정리하자면 북미 대륙의 천연가스 고갈입니다.

멕시코의 천연가스 생산은 수요를 따르지 못해 미국에서 수입해야 하며,

캐나다는 자국의 수요증가로, 미국에 가스를 팔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북미 대륙의 거의 모든 화력발전 시스템은, 석유가 비싸기 때문에 천연가스를 때고 있는데,

이것이 없어지면 거의 게임 오버라고 보아야 합니다.

물론 원자력 발전 등으로 바꿀 순 있습니다만, 시설비도 많이 들고, 주문한다고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며 ,환경운동의 폐해를 뒤없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이젠 미국은 조용히 죽음을 기다려야 할 시한부 생명이지만,미국의 특성으로 볼 때 한번 골을 부리고 죽을 것 같아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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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李蘭胡
PKwon/Serafin2024. 8. 18. 19:47

2024/08/15

(종전기념일기념)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Revival)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이라는 작품은 똥같은 소설인데 옛날에 한번 논했으나,

 

MBC에서 드라마로 제작한다고 해서 다시 한번 논합니다.

 

그런데 제작되고도 2년이나 묵힌 후에 나온다고 하니 그 퀄리티는 그리 좋지 않을 것으로 보이므로 그 작품 자체는 논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픽션을 잘 읽지 않게 되었는데,

 

거의 모든 작가들이 다 밥맛입니다.

 

도대체 어떤 정신상태들로 살아가는지 심히 궁금한 것들이 많습니다.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세상이라고는 전혀 모르면서 자기들이 구상한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진실인 줄 알고 글이라고 그적이다 보니 편협하고 , 소설에 나오는 사이코들보다 작가라는 것들이 훠-ㄹ씬 더 악해보입니다.

나는 소설쓰는 재능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되지는 않았는데,

 

그래서 요새 사람들은 그렇게 배설한 글들을 거의 읽지 않게 되었고, 할일 없는 녀자들만 픽션을 읽으니 자연히 그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만 남아버렸습니다. 이는 언어에 상관없이 똑같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저는 픽션을 거의 읽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좋은 소설 추천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제가 읽고 싶은 책이 아니면 굳이 안읽고 특히 1980년 이후 나온 책들은 거의 읽지 않습니다.

 

저자나 책에 대해 장황하게 이야기할 기분도 안 나고, 간단한 줄거리만 말하자면,

 

독일 어느 마을에 녀자 2명을 죽인 토비아스라는 사람이 돌아오는데,

 

10년형만 받았다고 하더군요.

 

여기서부터 이미 한국에서 각색이 불가능합니다.

 

애당초 이런 사람이 10년만에 집에 돌아온다는 것부터가 이상한 거고, 살인사건으로 집안은 풍비박산이 낫다고 했으니 변호사비도 없을 텐데 적어도 25년은 지나야 돌아올 것이며,

 

온갖 렉카들이 붙어서 '환영' 할 것입니다 우하하.

 

책이 나온 시점은 대충 2000년대초였던 것 같은데 그때와 지금이 완전히 시대가 다르고 독일은 렉카들이 많은지 잘 모르겠으나 한국은 렉카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옯기기 어렵습니다.

 

어쨌든 결론만 말하자면, 마을에 흘러들어온 부랑아 아멜리와, 마을을 지배하던 테를린덴 가의 자폐아로 짐승같이 취급을 받아 집안이 망하기를 무의식적으로 원하던 티스의 '활약'으로,

 

토비아스의 결백함을 밝히는 과정에서 테를린덴 가와, 마을 출신으로 문화부장관까지 높이 출세한 라우터바흐는 파멸의 길을 걷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아멜리는 부랑아이므로 이 마을이 잘 되든 말든 1도 상관없는 자였고 티스도 자폐아라 역시 집안이 잘나가도 자기에겐 1도 도움될 것이 없기 때문에, 집안이 망하면 자기가 잘될 가능성이 1%라도 더 생기니까 이들의 광란으로 (본래 이 시리즈는 형사들이 주인공이고 상당수 그들의 사생활을 논하나, 사실 이들은 사건해결에 그다지 도움되는 건 없음)

 

테를린덴 가가 하던 사업으로 마을 사람들의 반이 먹고 살았따고 하는데,

 

마지막에, 테를린덴 가는 금치산자인 티스 한 명만 남게 되니 그 후견인(즉 실질적으로 테를린덴 가의 재산을 처분할 수 있는 자 - 한국은 독일법을 베껴와서 독일의 후견인제도는 한국의 것과 같음) 으로는 외가쪽으로 어떻게 친척관계가 되었던 토비아스가 선정되었으나 소설은 토비아스가 총에 맞아 혼수상태인 상황에서 끝납니다.

 

토비아스가 죽지 않더라도 이 마을에 계속 살 가능성은 0%이며, 이 마을은 쫑난 겁니다. 토비아스는 티스를 시설 같은 데 맡겨버리고, 아멜리와 함께 떠나든지 혼자 떠나든지, 다시는 이 마을에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고,

생각만 해도 역겨울 테를린덴 가의 사업은 팔아 치울 것이니, 이 마을도 다른 마을들처럼 죽는 일만 남게 됩니다. 마을의 지배자도 잃고 마을에서 난 가장 위대한 인물도 잃은 겁니다.

며칠 전에 말한 '변호인측증인' 이야기처럼, 마을 사람들에게는 토비아스가 그냥 억울한 채로 죽는 게 옳은 것이었고, 토비아스의 억울함을 풀어 주려는 부랑아 아멜리나 자폐아 티스는 '악'(惡)인 것입니다.

이 작품을 쓴 자는 당연히 녀자입니다.

남자 작가가 쓴 작품들은, 비록 주인공이 억울하더라도 마을의 장래나 사회의 안정을 위해 억울한 채로 죽게 하는 게 많은데,

녀자들은 생리적으로, 큰 놈을 죽이고 싶다 이런 감정들이 있기 때문에, 뒷일이야 아몰랑 이렇게 사고하므로 결국 한 마을을 죽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후속작품들이 있으나 토비아스나 이 마을의 이후 운명은 언급되지 않습니다.

===

나는, 1913년 존재하지 않았던 나라들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2차대전 후 영국, 프랑스, 화란 등은 옛 식민지들을 되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 잘난 do-goodism인지, 유럽을 약하게 하려는 수작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방해했습니다.

 

장호석 같은 친미주의자들은 이걸 잘했다고 하고 미국이 아무렇게나 그어놓은 국경들을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데, 웃기지도 않아요.

 

화란은 난령인도(인니) 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면서, 수카르노 등의 '독립세력'들을 쟈와섬 끄트마리까지 몰아넣었고, 이제 수카르노 등은 바다에 빠져죽을 일만 남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쿡은, 계속 인니의 반란세력을 몰아붙이면 미국에서 화란에 하는 원조를 끊고 마샬플랜에도 가입시키지 않겠다고 을러댔습니다.

 

이런 웃기는 짓이 어디있습니까 ? 우하하.

 

미쿡이 손을 비틀어서 인니라는 웃기는 나라가 생겨났습니다.

 

이건 병신짓입니다.

 

지금 존재하는 나라들 중 3/4이상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나라들입니다.

 

금년 종전기념일에는, 건국절 이야기가 다시 나오고, 리종찬의 웃기는 짓 등으로 독립운동세력에 대한 회의가 다시 살아나는데,

 

마침 방글라데시에서 레짐체인지가 났다고 하더군요.

 

방글라는 독립운동에 기여했던 자들이 대대로 관직을 세습하도록 하는 제도가 있었떤 모양이고, 그래서 나라가 그 꼬라지인데.

 

이번 레짐체인지로 그것이 없어진 모양입니다.

일본에게서 독립은 미국이 시켜줬다고 황장수가 말했는데 황장수도 진주에서 지주로 잘나갔던 사람의 자식입니다. 아비가 무슨 사업하다가 다 말아먹었다고 하나 아들을 서울대 보낼 정도의 힘은 남아있었습니다.

이제 문명의 위기가 찾아오면서, 문명을 아끼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 문명에서 털어먹으려는 세력 사이의 괴리가 발생하고 있고 한쪽은 다른쪽을 절멸시키게 될 것입니다.



Posted by 李蘭胡
PKwon/Serafin2024. 8. 7. 22:22

Serafin

생활의 지혜 - 작은 선물이 맵다

思考訓練2022/06/0915:05 5 -

쥐나 공산당들이 한 심리적 시험에서 이런 게 있다고 합니다.


죄수들 중 변절을 시키려고 하는데,


오히려 큰 거 (노역 면제, 면회 허용 같은 것) 는 효과가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작은 것


(예를 들어, 힘든 일을 한 후에 사탕 한 알, 담배 한 모금, 조그만 나체그름 엽서 한 개 같은 거)


 이 의외로 효과가 아주 좋았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에도 안 넘어가는 사람이 있기는 했으나, 2/3 이상은 이런 작은 것에 넘어갔었다고 합니다.


이미 성경에도 에서가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팔앗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을 때, 이대로 가면 넘어지겠다 싶을 때 , 한번 , 두번도 아니고 딱 한번 받쳐주면, 그 효과가 그만인 것입니다.


파블로프의 조건반사 연구는 그가 쏘련에 남아서 완성시킨 것인데,


중공의 이러한 심리연구는 조건반사와 겹쳐, 죄수들이나 포섭해야 할 사람이, 오늘은 이런 작은 거 안주나 이렇게 기대하게 하는 심리가 생겨 그쪽으로 관심을 더 갖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합니다.


미군들이 기브미쪼꼬렛 할 때 쪼꼬렛이 전장이라 결코 흔한 물건이 아닌데도 애들에게 나누어 준 것도,


그 기브미쪼꼬렛 하고 받아 먹은 애들이 늙어서도 아직도 미군 떠나지 말라고 지지시위 합니다. 어렸을 때 먹은 그 쪼꼬렛 맛을 잊지 못해서.


영원히 친미세력을 만들어 버린 거입니다.


아프간에 가서 뭐 지어주고 뭐 급식해 주고 아모 의미 없었습니다. 그런 걸로 사람 마음 못 잡았어요.


아주 쪼끄만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잡고 , 언제나 주지 않아서 늘 기대하도록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 교훈을 잊고 마구 마구 퍼주다가 좆된 것입니다 우하하.


=====


저도 조그만 선물로 효과를 많이 보았습니다.


저는 인생이 아무래도 저보다 강한 자들을 저보다 약한 자들보다 많이 만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생고생 해서 비싼 선물 갖고 가 봐야 경쟁이 되겠습니까? 우하하.


이럴 때는 야곱의 팥죽처럼 대할 수밖에 없었죠.


한국은 이쪽과 문화가 달라서 직접 비교는 어려우나, 5달러 이하의 기호품을 가끔 앵겼더니, 인생이 조금은 편해지더군요 하하.


한국은 기본으로 해야 하는 선물문화가 있어서 직접 이야기하기는 어려우나,


머리를 좀 쓰면, 굳이 선물값을 많이 내지 않아도 게릴라전법으로 효과를 내는 방법이 있을 수 있고, 선물이 아니더라도 말이나 제스쳐 같은 것을 적재적소에 잘 쓰면, 도움이 될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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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李蘭胡
PKwon/Serafin2024. 8. 7. 22:21

Serafin

(Revival) 막부 대로 이이 나오스케(井伊直弼)가 죽은 날은

魏晋2022/06/1011:09 6 -

1860년 3월 24일(양력), 막부의 대로 이이 나오스케는 에도성 앞 사쿠라다문 앞에서 습격을 당하여,


우여곡절 끝에 목이 잘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4월 18일(양력) 까지 살아 있다가, 이날 죽었다고 발표가 났습니다.


어떻게 목이 잘렸는데 25일아니 더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요?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


이이 나오스케를 죽인 사람들은, 그의 머리를 갖고 도망쳤습니다.


그 머리의 행방은 여러 설이 있는데 이들이 살았던 미토(이바라키현) 로 그것을 가져갔다고도 하고, 가져가던 사람이 전투중 상처로 쓰러져서 어느 집 앞에서 죽었는데 그 집에서 맡았다가 나오스케의 고향인 히코네(시가현) 에 돌려 주었다고도 하는데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거물의 행차라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서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숨기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나,


이렇게 되면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하는데 그 이야기는 밑에 하겠습니다.


나오스케의 부하들인 히코네 사람들은, 우선 현장에 쓰러진 시체들 중 나오스케와 인상이 비슷한 자의 머리를 베어, 나오스케의 몸통에 대충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어차피 시가현은 산골이고 사무라이쯤 되는 신분이면 이이가문의 피를 어떤 형식이든 받은 자들이 많았을 테니, 그와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은 여럿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썩지 않도록 그것을 소금에 절여 놓고,


그의 에도내 저택인 세타가야(이름처럼 세타가야구에 있었음) 에는 사람처럼 생긴 인형을 갖다놓고 이불을 덮힌 후, 이이 공이 중병이라 사람을 볼 수 없습니다 하였고 ,


막부를 비롯해서, 여러 유력인사들이 위문품을 보내고 나오스케의 "병문안"을 하였습니다.


나오스케는 사망 당시 44세에 불과하여 후계자를 정해 놓지 않았으며 적자가 없고 서자들만 있었습니다.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았던 아이마로는, 만 12세가 못 되었으며 그 이름의 형태로 볼 떄 (이이 가문의 당주는 이름에 "나오" 가 들어가며, 심지어 녀자였던 이이 나오토라도 나오를 이름에 썼음) 그를 후게자로 할 지는 정해 놓지 않았던 상태였으나,


후계자가 없으면 가문이 없어지므로, 아이마로에게 급히 "나오노리" 라는 이름이 주어지고 히코네번에서 막부에 다시 뇌물을 크게 주어 나오노리를 후계자로 삼게 해달라고 주청했습니다. (막부의 허락이 없으면 가문을 승계시킬 수 없었음.)


막부에서 나오노리를 후계자로 인정한다는 증서가 내려온 후에야 이이 나오스케의 죽음을 발표하고 장례를 치른 후 나오노리를 다음 이이 가문의 당주로 삼았습니다.


나오스케가 죽었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사실이었지만 (구경하던 사람들이 자객들이 나오스케의 머리를 들고 가는 것을 다 보았음)


이런 생쑈를 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의외로 매우 복잡합니다.



당시의 법으로는, 한 가문의 가주가 습격을 당해 죽으면, 이는 무사의 명예를 떨어뜨린 것이므로 가문이 없어져야 했습니다.


이이 가문은 대망에도 나온 것처럼 (hkta님 고맙습니다),


아주 오래 전부터 도쿠가와 가문을 섬긴 충신 중의 충신 가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오스케가 죽은 것은, 법도에 따라 그를 호위하는 무사들은 권총을 휴대할 수 없었는데, 자객들은 권총을 쏘아댔기 떄문에 방어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나오스케는 검술의 달인이었으나, 자객들이 쏜 총에 허벅지를 맞아 제대로 일어나지 못하는 동안 목이 잘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이 가문에게 책임을 물릴 수 없었는데,


이것을 문제삼아 이이 가문을 없애버리면, 대표적인 막부의 충신 가문 하나가 없어지는 건데 가뜩이나 막부가 코너에 몰리는 상황에서 이런 짓을 하면 누가 막부에게 충성하겠습니까?


그리고 이이 가문을 없애버리면 낭인이 되는 이이 가문의 가신들(이들도 도쿠가와막부를 아주 오래 섬긴 집안들이었습니다) 이 모두 막부의 적이 되어버리는데 그 책임을 누가 지겠습니까?


또한, 이이 가문은 법도에 따라 주군을 죽인 미토 번에 복수해야 하는데,


미토는 도쿠가와 어삼가 (이에야스의 세 작은 아들들이 세운 가문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미토는 전에 말했던 여러 "웅번" 중 하니로서 그 세력이 적지 않았습니다.


가뜩이나 막부가 약해지는데, 충신인 이이 가문이 떨어져 나가고, 그나마 친도쿠가와씨 영주들 중 가장 세력이 크고 친족인 도쿠가와씨의 미토가 떨어져 나가는데,


막부로선 왼팔과 오른발을 잘라 내는 것과 같은 꼴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생쑈라도 해 가면서 이이 가문을 존속시킬 필요가 있었떤 것입니다!


더우기 히코네와 미토는 멀리 있으니 얘들이 어디서 싸우겠습니까?


"에도"에서 싸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당하는 건 에도 사람들 아니겠습니까 우하하.


그렇게 되면 에도 시민들도 막부가 처리를 좆같이 해서 에도가 무법천지가 되었으니 우리도 막부를 버리겠다 나와 버릴 수가 있었어요!


얼마 후 미토 전 번주(이지만 실권자) 인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사망했습니다. 자살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이 사망 얼마 후 사망했습니다.


나리아키의 죽음으로 히코네와 미토의 갈등은 일단 "봉합" 되고, 막부는 몇년 더 연명하게 되었습니다.


안 그랬으면, 히코네와 미토 모두 반란을 일으켜, 막부는 그걸로 끝장이 나고 말았을 겁니다.


====


이름조차 열거하기 귀찮은 자칭 우파 유튜버들이,


북핵 타령하고 있습니다.


윤suck열, 김건희 등이 "브로커"라는 영화를 처보러 간다는데 (송강호 등 출연 - 오늘은 리지은 이야기 안합니다),


"김정은" 이 핵실험 하는데 영화 처보냐, 이러면 문재인과 뭐가 다르냐 이런 말 하고 있습니다.


윤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쿡은 왜 가만 있느냐?


미쿡이 북핵을 타격하면 북괴는 있는 거 없는 거 다 갖다가 "일본"에 쏘아 댑니다.


전에 한번 말햇지만 일본경제가 아작나면 세계의 모든 파생상품이 터지면서 그걸로 끝나는 거야요. (어떻게 끝나는지느 다음주에 다시 이야기합니다.)


그 위험부담을 감당할 수 있느냐?


2020년 말 트럼프가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지나에 전쟁을 선포하려 했는데 "마크 밀리" 당시 합참의장이 이를 쥐나에 보고한 바 있습니다.


밀리는 미쿡이 쥐나와 전면전쟁을 하기를 원치 않았으므로 그런 반역행위를 한 것입니다.


즉 그 위험부담을 감당할 수 "없다" 는 것이 이미 증명된 바 있습니다.


그러니 미쿡 측에서는 기분은 나쁘지만 북괴가 하는 짓에 개무시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겁니다 우하하.


(김건모가 이혼을 하는데, 이미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겠지만 지금 발표는 가세연이 얼마나 좆같은 놈들인가를 재상기시키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가세연이 김건모 가정을 깬 주범이 되어 버렸습니다.


김동연이 살아 돌아옴으로서, "그들"의 힘이 완벽하지 않음이 증명되고 말았고 그러니까 북괴도 다시금 힘을 얻은 겁니다.


그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강용석, 김세의는 아무래도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눈물을 머금고 똥꼬쇼 좀 하고 사퇴했으면 책임을 면했을 텐데, 강용석이 고집 부리다가 .. 이만 하겠습니다.)


몇몇 우파 유튜버들 기분 좋으라고 북한을 쳤다가, 큰일 터지면, 걔들이 책임 질 겁니까?


때로는,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분통이 터지더라도 , 참아야 할 때가 있는 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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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李蘭胡
PKwon/Serafin2024. 8. 7. 22:20

Serafin

노비환천법 , 새마을운동, 지주들의 행태

義齒2022/06/1612:29 8 -

노비환천법은, 956년 광종 황제 리왕소가 도입한 노비안검법을,


987년 "최승로"의 제의로 성종 왕치가 뒤집은 것입니다.


(성종, 목종 때는 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줄이고 리씨 성을 쓰지 않았으며, 성종은 친송, 목종은 그 어미 천추태후의 영향으로 친요 정책을 썼다가, 강조가 뒤집기를 성공시켜 계당을 재흥하고 리왕순은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물론 그 다음 거란의 침입으로 계당은 멸망 했습니다만.)


노비안검법은 9세기, 10세기의 혼란으로 노비가 된 수많은 사람들을 해방한 법입니다.


사실, 노비제는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었습니다. 노비와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있었으나, 이것이 대대손손 묶이거나 하는 일은 시대에 따라 좀 있었지만 태평성대에는 없었습니다. (일본의 천민들은 다른 이유로 천민이 되었는데 오늘은 그 이야기는 하지 않습니다.)


호족들은 많은 노비가 있었고 리왕소는 이들을 해방함으로서 호족의 힘을 약화시켰는데,


리왕치 시대에는 계당의 국력이 약해졌고, 리왕치 자신도 쥐나와 친하려는 기질이 있어 계당을 없애고 고려로 복귀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10도를 보유하고 있었는데 (지명 비정은 하지 않습니다), 거란의 침공으로 계당이 멸망한 후 이 중 2도만 남고, 반도에 충청도(양광도라고도 함), 경상도, 전라도 등 3도를 놓았습니다. (강원도는 교주도라고 가르치지만 도를 둘 수 있는 사이즈가 아니었고, 원주-강릉까지는 경상도에 포함되고 춘천이북은 "동계"에 포함되었을 것이라 봅니다. 북계는 비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반도지역의 노비들은, 반도는 현종이 나주에 피난하기 전에는 행정력이 닿지 않았으므로 계속 노비로 있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도 시나이반도는 미스르 정부의 치안이 통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 시절만 해도 반도는 그냥 변방으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어쨌든, 노비환천법으로 주인에게 불손한 노비들은 모두 천민으로 되돌린다고 했으나, 주인에게 불손하다는 기준은 주인 멋대로 정하는 것이니, 현실적으로는 거의 다 환천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고 이는 결국 거란 침공 때에 인구가 엄청나게 주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미 자유인이던 자들이 다시 노비가 되느니 요나라로 도망가지 않겠습니까? 당시는 인구가 국력이니 요나라에서 그 노비들을 돌려 보내야 할 이유도 없고.


19세기에도 적지 않은 메히코 노비들(노비라고 하지는 않았으나, 노예와 다를 바 없는 대우) 이 미쿡으로 도망가 텍사스인이 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민족은, 이미 해방된 노비를 다시 원래대로 돌려 놓은 력사가 있습니다. 교과서에서는 노비안검법 이야기는 해도 노비환천법 이야기는 안하는 걸로 아는데, 숨기고 싶은 력사 중 하나입니다.



=====

전 블로그에서 , 조봉암의 토지개혁(1950년 봄) 을 뒤엎는 데에 거의 성공한, 부산 출신의 최원봉의원(최백호 아버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6.25 전쟁이 아니었으면, 최원봉의 법 (지주들이 우선적으로 불하되는 땅을 다시 사게 하자) 이 통과 되었을 겁니다.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당시 이름은 민주국민당. 자유당은 6.25 이후에나 유명해지고 당시는 민주당이 제1당이었음) 은 거의 다 지주출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최원봉이 이 떄 이겼으면, 비율빈 됐을 겁니다 우하하. 마르코스 가문, 아끼노 가문, 코후앙코 가문(코라손 코후앙코 아끼노의 가문), 두테르테 가문 (다바오에서는 유명가문이었다 합니다) 등이 대대손손 해먹는 그런 체제로 영원히.


최원봉은 계속 리승만에게 게기다가 1950년 11월 10일 튀르크 군용트럭에 치어 뒈졌는데, 최원봉이 하려던 짓이 워낙 엄청난 짓이어서 (그 전에도 집안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긴 하나), 최원봉 집에서는 아예 최원봉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최원봉의 유일한 아들인 당시 생후 6개월이던 최백호도 맡지 않았습니다.  최백호는 최원봉이 남긴 기록 같은 걸 하나도 보지 못했다 합니다.


그리고 전쟁으로 지주들의 힘이 약해져서, 민주당 정치인들도 최원봉을 지워버림으로서 이 문제가 다시 거론되지 않았는데,


최백호가, 가요계 지주세력의 대표와도 같은 리지은과 2013년 듀엣곡을 같이 부른 적이 있습니다. 최백호의 가족사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아서, 그것의 의미를 아는 사람이 적은데, 이 이야기는 오늘 하면 너무 길어지니 나중에 다시 합니다. 


====




노비제도는 법적으로는 갑오경장 때에 사라졌다고는 하나, 서울, 평양 등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남아 있었습니다.


박정희 집안도 장택상 집의 머슴이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박정희 아버지 무덤이 명당이란 소리를 듣고 장택상 일가에서 애썼으나 박정희가 육군준장이라 못 파내다가 결국 5.16 이후 대들지 못하고 그 대신 경부고속도로가 장택상일가 소유 토지를 돌아가게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6.25 전쟁으로 사회제도가 무너졌지만, 대구-경주-부산 등 영남 동남부 지역은 공산군의 손에 떨어진 적이 없어서, 이 지역에서는 원래의 사회제도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괜히 이 지역에서 이후의 대통령을 독점한 것이 아녜요. (놈현은 강진출신이고 문재인은 흥남출신이나 어쨌든 이 동네 출신이라 자칭했고 실제로 그쪽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았었음.)


임시대통령 최규하(그도 원주 출신이고 상술했듯이 원주는 지금은 경기도세력권이지만 옛날에는 경북세력권) 제외하면, 1961년 이후 이쪽 출신이 아닌 대통령은 김대중과 윤suck열뿐입니다.  취임 한달 남짓의 윤은 논외로 하고, 김대쥐 5년 제외하면 6.25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고 전통적인 토호들이 힘을 보유했던 이쪽이 한국을 움직여온 것은 사실입니다. 김대쥐는 임기의 대부분을 전라도쪽에도 그쪽 토호들이 지분을 갖게 하는 데에 소비했습니다. 윤suck열이 김한길을 또 무슨 자리 앉혔다는데 , 윤이 한덕수를 다시 들여다 쓰고 김한길, 박주선 등을 버리지 않는 이유도 영남쪽의 사랑을 완전히 받을 수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박정희는 영남의 명문가 출신이 아닌지라, 아직도 영남 동남부에 굳건히 버티고 있던 노비제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 새마을운동을 한 것입니다 . 그게 진짜 이유입니다.


실제로 영남토호 출신인 김영삼이 그렇게 박정희를 반대한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야요.


전두환도 조부가 전라도 출신 동학 접주라는 설(확인은 불능) 이 있는 등 경상도 주류쪽은 아니어서 타지역출신의 테크노크라시를 하려고 했는데, 아웅산으로 그것이 무너지면서 결국 대구출신 노태우를 후계자로 할 수밖에 없었고, 노태우는 김영삼을 받아들이면서 경상도 구세력을 부활시켰으며 이들은 지금도 윤핵관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습니다.



6.25의 피해를 입지 않은 경상도 동남부 지역에는 1970년대까지 대대로 이어지는 노비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새마을운동으로 뿌리가 뽑혔습니다. (섬노예 등은 다른 문제인데 오늘 이야기 안합니다.)

===================



지주들은 본능적으로 지배하려고 하고 신분제 고착을 원합니다.


이미 한번 노비들을 다시 원상복귀시킨 예도 있고, 최원봉이 토지개혁을 거의 끝장낼 뻔한 력사도 있습니다. 보복이 두려워 최원봉 집에서 최백호를 버렸지, 최원봉의 지주제 뒤집기 성공했으면  최원봉 정치패밀리가 만들어지고 최백호는 가수가 아닌(아니 가수를 했어도), 대통령을 했을 겁니다.  동남아지아처럼 말이죠.


경상도 대통령들이 경상도를 안 챙겨 준다고 아직도 징징거리고 홍준표도 그것을 노리고 대구로 내려간 것 같은데, 사실 경상도 출신 대통령들 중 김영삼 정도만 경상도의 지배계급 출신이고 나머지는 아니라서, 경상도의 자신들과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몇개 가문만 챙겨줬지 나머지는 국물도 없었는데,  


징징거릴 수 있는 사람들은 그럴 만한 건덕지가 있던 사람들이니 그러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사실 경상도든 다른 도든 크게 다를 것도 없습니다. 한마디로 옛 기득권이 그리워서 이를 회복시켜 줄 만한 자를 찾아 올렸지만 전부 다 자신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니 아직도 징징거리고 있는 것입니다.



===


노예제가 없어진 대신 농장들이 있는 나라들은,


외쿡인들로 그 궂은일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밀입국자가 많은 미쿡 등은 그들이 사실상 노예이고 , 밀입국자들을 싫어하는 오스트레일리아는 그 대신 "워킹홀리데이 " 같은 걸로 값싼 노동력을 충당하고 있는데, (한국도 비슷. 한국은 이제 결혼이민 등으로 태어난 동남아 혼혈들 중 지능이 낮은 자들이 노비와 다름없이 될 것입니다.) 유럽도 이제 우크라이나 (천주교가 많은 나라라 그나마 문화적으로 좀 비슷한) 피난자들이 그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애당초 지주들은 마음대로 굴릴 수 있고 죽어도 상관없는 그런 사람들을 원하므로 노예제를 좋아하는 본능이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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